교육을 말한다

교육은 정치다!

리틀윙 2017. 2. 27. 11:24

교육은 정치다.

사실, 이 말은 너무나 자명한 명제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일반인은 물론 교사집단 내에서도 이 명제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을 품는 분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왜 교육이 정치인가?

 

이에 대해, 교육이 정치가 아니라는 관점, 즉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이며, 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믿음의 허구성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대관절 어떻게 하면 교사가 정치적으로 중립을 취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십중팔구 교과서대로, 교사용지도서대로 가르치는 것이 중립적 입장이라 할 것이다.

이게 말도 안 되는 허구라는 것은 우리 어릴 때 유신헌법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친 우리의 선생님들이 과연 정치적으로 중립이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때는 그때라고?

박근혜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올3월부터 당장 국정화 역사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기춘과 최순실이 주도해 만든 국정화 역사교과서가 과연 중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까? 박근혜 아버지 다까끼 마사오를 공평무사하게 서술하고 있을까?

 

 

[1]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교육이란 것은 관념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순도 100퍼센트의 맑은 공기나 맑은 물이 없듯이 교육은 어떤 식이든 특정 정부(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나 특정 출판사의 정치적 입장이 반영되며(=국가수준의 교육과정), 최종적으로는 교실교육과정으로 교사의 정치적 입장이라는 스크린을 거쳐 학생들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입장은 말하자면, 양팔저울에서 좌로든 우로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확히 균형을 잡은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알파고가 아닌 이상 이게 가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이 그 외연이 너무나 광범위한 까닭에 이를테면, 분배의 문제, 양성평등의 문제, 통일 문제, 박근혜/최순실 문제 등등의 모든 문제에서 정치적 중립을 자임하는 사람들이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양팔저울의 균형을 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2]

자신은 정치적 중립임을 떠드는 자체가 정치적이다.

단적인 예로, 만약 현재의 수구꼴통 정부 대신 급진적인 정부가 들어서서 진보적인 내용의 교육과정을 만든다면, 현재 자신이 정치적으로 중립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교사들은 새 교육과정에 거부감을 품고 비판적인 교육실천을 해 갈 것이다.

웃기는 것은 이런 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는 점이다. , 자신은 양팔저울의 균형을 잡고 있는데 종북 정권이 좌편향 되어 있다고 떠들 것이다.

이러한 과대망상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착각에서 기인하는 바, 이것은 결국 이데올로기 교육의 폐해인 것이다.

38분마다 한 명씩 자살하는 이 암울한 사회에서 악덕재벌이 무당 정권과 사바사바해서 서민들을 쪽박차게 만들어도 교사는 정치에 관해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그저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것, 이것이 정치적 중립을 의미한다면...... 그 중립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정한 정치적 편당을 이롭게 하는 셈이 된다.

결국, 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발언인 것이다.

 

 

[3]

끝으로, 교과서 내용이나 시국에 대한 관점을 떠나 도의적으로교사가 정치적 입장을 견지해야만 이유를 말하겠다.

교육의 본질은 사랑의 실천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를테면 이명박정권 때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잘 받기 위해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상기해보자. 1학기 내내 미술/음악 수업 안 하고 문제풀이 하지 않았나?

또한, 철학은 빈곤하고 권위주의는 하늘을 찌르는 학교장이 이를테면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한 학기에 두 번씩 시험을 치게 한다면(현재 이런 학교 많다), 더구나 1학년에게도 시험을 치게 한다면, 그래서 코흘리개 아이들이 자기 가슴팍보다 더 큰 문제집 풀어대느라고 끙끙 댄다면, 교육자 된 우리의 심정이 어떨까? 미래의 주역이 될 새싹들을 이렇게 길러도 좋은 것일까?

 

이 경우에도 우리는 정치적 고민을 하고 응분의 액션을 취해야 한다.

전문 용어로 정치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그리 해야 한다.

그게 교육자다.

용기가 없어 그렇게 못하더라도 고민은 품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정치색을 띠지 않아야 하느니 하는 말은 삼가자.

 

누가뭐래도

교육은 정치다.

 

2017.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