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혁신학교의 문화 충격

리틀윙 2017. 2. 27. 02:08

 

이른바 혁신학교에 처음 근무하는 교사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홍역을 치르곤 한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 충격 cultural shock’이라 할 성질의 것인데, 교사 중심의 권위적인 기존 학교시스템에 익숙해 있다가 교사와 학생이 거의 수평적으로 만나는 혁신적인분위기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문화 충격은 일반 교사들은 물론 진보연하는 (이를테면) 전교조교사들도 겪는 점이다. 내가 다부초에 올 때도 그랬다. 이전에 자기 의지와 무관한 인사발령으로 이 학교에 근무하게 된 교사들이 모두 1년 만에 다른 학교로 옮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속으로 그 분들이 보수적인 탓에 혁신적인 이 학교의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는 것이려니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이치가 내게도 적용될 지는 몰랐던 것이다.

 

일반학교에서 학교장이나 교사들이 학생을 향해 지나친 훈육적 조치를 취하거나 하면, 우리는 참교육의 이름으로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진보적 교사를 자임해온 것인데, 막상 혁신학교의 진보적인 학교문화를 접하면서는 아이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거나 하는 이율배반적인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나마 이러한 각성이 찾아드는 것은 몇 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와 비슷한 정체성을 지닌 내 또래의 많은 교사들이 이런 혼란을 겪는 것인데, 다른 지역의 교사들에게서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피아제의 논리로 말하자면,

기존의 자기 인식체계(스키마)로 동화(assimilation)가 이루어지지 않는 낯선 외부 자극을 만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세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거나 하는 두 가지밖에 없다.

 

혁신학교의 싸가지 없는 아이들을 만날 때 많은 교사들은 자신의 기존 스키마가 옳다는 전제하에서 낯선 학교문화를 배척함으로써 자기 인지 심리의 평형(equilibrium)을 유지해 간다. 하지만 이러한 평형은 퇴행일 뿐이다. 새로운 환경에 자신의 스키마를 조절(accommodation)함으로써 새로운 평형을 꾀하려는 자세가 문자 그대로 진보(進步)이다.

 

물론, 새로운 자극에 맹목적으로 적응해 가는 것은 진보와 무관하다. 혁신학교에서 새로 시도하는 모든 것이 교육적으로 다 옳을 수는 없다. 자신의 신념에 기초하여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에도,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품었던 거부감 가운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것이 많다. 발전 혹은 진보는 기존의 무엇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하지만, 그 부정은 전면적인 부정의 형태를 취하진 않는다.

결국, 지혜란 기존의 인식 가운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력을 말하는 것이리라.

 

정리하면, 혁신학교에 뛰어 들 때 진보적인 교사 역시 일정한 문화충격으로 혼란을 겪게 되는데, 뼈를 깎는 마음으로 기존의 자기 인식에 대한 과감한 자기혁신을 꾀해야 한다. 무엇을 부정하고 무엇을 보존해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동료들과의 토론을 통해 그때그때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나침반은 언제나 좌우로 요동치면서 방향을 잡아간다. 흔들림이 없는 나침반은 고장 난 나침반일 뿐이다.

 

2017.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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