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창조학교와 혁신교육에 대한 단상

리틀윙 2017. 4. 3. 10:33

 

전국 17개 지자체 가운데 13개 시/도에서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대세를 이룸에 따라 경북을 비롯한 보수교육감 지역에서도 혁신교육이 뜨거운 관심사내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창조학교가 그 좋은 방증이다 .

 

처음에 나는 창조학교를 관주도 하에서 혁신교육 흉내 내는 그렇고 그런 시범학교의 아류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창조학교에는 보통의 시범학교와 구별되는 중대한 차별성이 있으니, 이 대열에 참여하는 교사에게 승진이나 이동에 쓰이는 어떠한 점수 따위의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점이다. , 물화된 외적 동기가 아닌 혁신교육을 염원하는 교사의 순수한 자발적 동기를 동력으로 추동되는 점에서 여느 제도권 교육사업과 질적으로 구별된다 하겠다.

 

그간에 제도권 교육이 망가져온 것이 교사를 점수의 노예로 길들이는 속물적 시스템이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건 정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말하자면, 혁신교육감 체제하의 혁신시범학교보다 보수교육감 체제하의 창조학교에서 교육적 진정성이 더 바람직한 모습을 띨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무릇, 교육은 결국 교사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교육은 주로 신념과 소신의 문제로서, 참교육의 실현을 위한 조건은 그것을 열망하는 교사 개인의 내발적 동기가 전부여야 한다.

 

그러나 열망이 갖춰져 있다고 해서 바람직한 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랑의 실천은 열망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문제(Art of Loving - Eric Fromm)이기 때문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수업에 관해서는 프로젝트수업을 비롯한 이런저런 기법들을 진보교육감 지역(이를테면 경기)으로부터 벤치마킹해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은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자치나 교사의 자율적 집행역량 부분에서는 별 진전 없이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어제 내게 다모임 관련 연수를 요청해 오신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

 

담당 선생님께선 학생자치를 비롯한 실천적인부분에 관한 노하우를 중심으로 강의해 달라고 하시는데, 나로선 고민이 많이 된다. 고민의 요지는 다부와 같은 소규모학교의 다문화 시스템을 큰 학교에서 어떻게 원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어젯밤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학교의 규모와 상관없이 유효하리라 확신한다. 그것은,

이론적인 부분과 실천적인 부분, 철학적인 부분과 기능적인 부분이 절대 따로 갈 수 없다는 것!

 

교육은 비단 교실수업이나 학생자치회 같은 특정 교육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이 교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학교 구성원들의 일상 전반에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교문을 벗어난 또래끼리의 부딪음 속에서도 이루어지니, 이게 잠재적 교육과정의 개념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문화와 동의어다. 혁신교육에서 혁신이란 학교문화의 혁신에 다름 아니다.

 

관리자와 교사, 교사와 학생, 선배학생과 후배학생 등, 각각의 위계적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으면, 민주적인 학생자치는 이루어질 수 없다. 교무회의에서 관리자나 담당 계원 혼자 지시하고 교사들은 수동적으로 받아 적기만 하는 회의문화가 척결되지 않으면 혁신적인 학생자치회는 불가능하다. 오직 민주주의를 살아본 교사만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교육은 자판기가 아니다.

일회성 연수를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처방전을 발급 받을 수는 없다. 혁신교육의 주체인 교사집단과 학교관리자가 학교문화를 혁신적으로 쇄신 하고자는 신념 아래 오랜 시간 동안 지난한 실천 과정을 통해 시나브로 경작해 갈 일이다.


201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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