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리좀

리틀윙 2017. 4. 3. 11:41

 

 

내 일천한 학문 여정에서 만난 이론체계 가운데 마르크스주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들뢰즈의 사상이다. 들뢰즈의 대표 저서(정확히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동 저작물) [천의 고원]을 나도 끝까지 읽어 보진 않았다. 이 책의 중심 개념인 리좀에 관해서만 알아도 좋을 것 같다. 이 개념을 만난 것은 신선한 충격이고 축복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마르크스주의에 천착해 가던 내가 균형잡힌 사고를 갖게 된 것은 들뢰즈와의 접속을 통해 가능했다.

    

 

 

 

 

10년 전, 들뢰즈의 이 천재적인 개념을 접했을 때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있다. 김대중 국민정부를 지나 노무현 참여정부에 이르러 한반도에 남북화해의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의 일이다. 이남에서 주최한 아시안 게임에 이북 선수들이 참가하여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을 가슴을 설레게 했는데, 그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민적 주목을 끈 이북의 스타들이 있었으니 이른바 북한 미녀 응원단이다. 하루는 이 미녀들이 버스를 타고 안동의 민속박물관을 유람하였는데, 도로변에 걸어놓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비에 적셔진 것을 보고선 버스를 억지로 세운 뒤 내려서 김정일 사진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남측을 향해 거센 불평을 터뜨리는 소동을 벌였다.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 사진 속엔 김정일과 김대중이 함께 있었건만, 마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혼자 비를 맞도록 남측이 방치한 것처럼 오두방정을 뜬 것이다.

 

이게 리좀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그 이치를 짚기 위해 리좀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리좀(rhizome)을 영어사전에 찾아보면, ‘뿌리줄기혹은 땅속줄기로 적혀 있다. ‘뿌리줄기라는 말에서 보듯 리좀은 뿌리이기도 하고 줄기이기도 한 것이지만, 들뢰즈가 말하는 리좀 개념은 뿌리(수목형 뿌리)에 대비되는 형태를 말한다.

 

 

 

 

 

    

 

수목형 뿌리는 우리가 흔히 보는 풀이나 나무의 뿌리이다. 수목형은 모든 것을 하나의 중심(나무의 기둥)으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서 각각의 뿌리들은 유기적 통일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중심, 하나의 일자(一者)로 모든 것을 귀속시키는 유형이 동일성의 철학인데, 들뢰즈는 서양의 철학이 이 동일성(초월성)의 병을 앓아왔다고 비판한다플라톤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일자에서 유출된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Plotinos)는 일자를 존재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도 아니며, 질적인 것도 양적인 것도 아니며, 어떤 장소에도 시간 안에도 없으나 자신에 의해 자신으로 항상 머물러 있으며, 운동 이전에 있고 정지 이전에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

 

수목형에 반해, 리좀형은 여러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형태를 취한다. 사진의 그림이 리좀 뿌리의 식물이다. 그 다음 사진은 리좀을 추상화한 것인데 그림에서 보듯 리좀에서는 시작과 끝도 없고 중심도 없다.

 

 

 

 

 

 

 

쉽게 말해, 수목형은 대가리(위대한 인물) 중심의 위계질서로 상징되고 리좀형은 만인이 수평적으로 만나는 민주적 소통형태라 보면 되겠다.

 

사진 속에서 장군님이 비를 맞는 것도 아니고 장군님의 사진이 비를 맞는데 그 사진을 끌어안고 통곡을 해대는 장면은 어릴 때부터 수목형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온 북한인민들의 정신세계를 대변해준다. 그들에게 리좀형 사고는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목형이 그들이 아는 유일무이한 세계관인 것이다.

이러한 수목형 세계관은 남한 꼴통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버이연합은 물론, (제대로 법을 집행하면 무기징혁에 처해야 할) 범죄자 박근혜에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했다고 궁궐에서 쫓겨난 여왕에게 비수를 날리니어쩌니 해대는 십상시들이 그러하다.

 

이런 한심한 수목형 사고가 우익들에게만 있을까? 좌경-우경종파패거리들의 정신세계 또한 수목형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의 운동권은 NL(민족해방론)우파와 PD(민중민주주의)좌파의 양대 종파패거리들로 나뉘어져 있다. 수령 혹은 영도자가 수목의 정점에 있는 NL조직은 이석기의 통진당에서 보듯, 수령(지도자)을 보위할 국면에서는 평상심을 잃고 대중을 경악하게 하는 막장 짓을 서슴지 않는다(사진). PD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수뇌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일반 구성원들은 그대로 따르게 하는 레닌의 전위정당이론(vanguardism)이야말로 수목형의 전형이라 하겠다.

 

민주노총이나 전교조의 의사결정방식이 레닌주의의 용어를 물려받아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 참칭하는데, 현실적으로 대의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의원들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모으는 일도 잘 없을 뿐더러 수목형에서는 구조적으로 이런 노력들이 불가능하다. 요컨대 수목형 체질에서 민주(democratic)는 허구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곤 집중화(centralization)밖에 없는 빛 좋은 개살구가 민주집중제인 것이다.

 

수목형 사고는 보수세력이나 진보세력, 운동권 내의 좌우경종파패거리들 뿐만 아니라 관료주의가 횡행하는 모든 집단 혹은 조직에서 볼 수 있다. 아니 관료주의가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관료제라는 시스템 자체가 수목형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조직의 구성원들은 수목형 지배구조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관료제라는 개념의 창시자인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합리성에 기반한 관료제에 힘입었다고 보았다.

 

조직사회에서 수목형 사고는 일정한 미덕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맡는 1학년 같은 3학년 아이들의 교실에서는 수목형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담임교사가 힘든 것이다. 저 신기에 가까운 카드섹션 퍼포먼스처럼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나도 편하고 또 아이들도 공부를 효율적으로 해가련만, 3월 지금 수업 시작하는 데만 10~20분이 걸린다.

 

그러나, 질서의식은 자유로움 속에서 형성해 가야 한다. 학교에서 일사불란한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측면은 별로 없다. 수목형 사회가 순기능을 하는 것은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말로 각인이 저마다 맡은 역할에 충실할 때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계의 부속품과 달리 사심을 품기 마련이다. 피라미드 구조에서 하층민들이 죽도록 열심히 일할 때, 상층부의 이재용-박근혜-최순실은 그들의 고혈을 빨고 있었다. 이들이 국정을 농단해 갈 때, 수목형 사고밖에 모르는 내시환관들은 저 미친 북한 미녀응원단들처럼 여왕마마의 비위 맞추기에 바빴다.

 

 

 

    

 

이 썩은 사회를 누가 바꿨는가?

민초들이다. 리좀이다.

이 리좀형 민초들은 특정 위대한 지도자의 리더십에 이끌려 광화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다. 이들이 모두 좌파인 것도 진보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 대열에 동참한 사람 가운데 대선 때 박근혜를 찍은 부류도 있을 것이다. 리좀의 특징인 비동일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리좀의 접속은 시작도 끝도 없다. 어디서 시작된 지도 모르지만 한없이 번져 간다. 광화문에 결집한 100만 민중들도 그랬다. 그 시작이 어디의 누구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소속도 연고도 묻지 않고 리좀의 뿌리처럼 그저 무작위로 얽히고설킨 것이 결과적으로 공고한 파쇼 괴물을 몰아낸 강력한 연대의 힘을 구축한 것이다. 낙락장송에 비해 리좀 하나 하나는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이 뿌리들이 일파만파로 접속할 때는 촛불이 횃불이 되고 마침내 들불로 광야를 불사르는 것이다.

 

이게 리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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