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온정주의

리틀윙 2017. 9. 14. 22:20

외래 개념 가운데 우리가 잘못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온정주의가 그 한 예이다.

물 건너 온 개념은 반드시 그 원래 이름 즉, 원어가 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온정주의는 영어로 paternalism인데, 이 단어가 왜 온정주의로 번역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인이 품는 온정주의에 대한 오해는 바로 이 심각한 오역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위키피디어에서 ‘paternalism’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온정주의란,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자유 혹은 자율성을 (권력자가) 제한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한, 온정주의는 개인의 의지에 반하거나 의지를 거스르는 행위 혹은 우월감을 표명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온정주의는 언제나 경멸적인 용법으로 쓰인다.

Paternalism is action limiting a person or group's liberty or autonomy which is intended to promote their own good. Paternalism can also imply that the behavior is against or regardless of the will of a person, or also that the behavior expresses an attitude of superiority. Paternalism, paternalistic and paternalist have all been used as a pejorative.

 

라틴어 어근 pater-father , 아버지를 뜻한다. 온정주의는 집단 내의 어떤 우월한 존재가 자기 휘하의 어른을 어린애 취급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불만 품지 말고 내 말 잘 들으면 좋은 일 생길 것이라는 식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는 방식이 온정주의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온정주의적 지배방식이라는 표현처럼, 권력자의 어떤 태도에 대한 비판적(경멸적) 의미로 쓰는 것이 맞지, 이를테면 학교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주장하는 민주노총의 입장이나 그에 동의를 보내는 정규직 교사의 태도를 온정주의라 일컫는 것은 난센스라 하겠다.

 

paternalism온정주의로 옮겨지면서 이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뉘앙스의 언어가 값싼 동정론이란 의미로 통용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약자를 향해 품는 따뜻한 정(溫情)을 부정적 의미로 치부해 버린다면, 만인이 만인에 대해 야수가 되어 투쟁을 벌이는 패륜적 생존경쟁사회를 정당화하는 꼴이 된다. , ‘온정주의라는 개념은 paternalism 본래의 당파성과 정반대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셈이 된다.

 

40분마다 1명씩 우리의 이웃이 자살로 죽어가는 사회다. 값싼 동정심이라도 아쉽기만 한 잔인한 세상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최소한의 나눔의 정의만 실현되어도 아까운 생명을 덜 죽게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값싼 것이든 값진 것이든 이웃의 아픔(path-)을 함께(sym-) 나누는 연민의 정(sympathy)’은 절대적으로 소중한 가치라 하겠다.

무엇보다, 이것은 온정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2017.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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