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당신 언어의 한계가 당신 삶의 한계다

리틀윙 2017. 9. 15. 07:03

당신 언어의 한계가 당신 삶의 한계다!

 

The limits of your language are the limits of your life!

 

언어의 한계는 그가 품는 인식의 한계를 반영한다. 그리고 인식의 한계는 삶의 한계로 이어진다인식과 삶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인식과 삶 가운데 보다 우선적인 것은 삶이다. 개인의 인식은 그가 경험하는 삶에 조건화되는 것이다. 교양의 기회가 없었던 전근대적 삶에서는 절대적으로 그러했다. 이를테면,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의 삶에서 이혼이라는 개념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혼이라는 언어가 국어사전이나 신문활자에서 대상적으로 존재할 뿐 자신의 주체적 인식 속에 존재하지 않으니, 자신의 삶 속에서도 이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혼에 관한 인식의 한계는 반()봉건적 시대상황에 종속된 삶의 한계에 따른 것이었다. 삶이 있고 인식이 있는 것이기에, 삶의 변화가 없으면 인식의 변화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삶이 바뀌지 않으면 인식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은 기계적 유물론의 전형적인 오류다. 이런 식이라면, 교육이라는 것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다시, 처음 문장으로 돌아가자.

당신 언어의 한계가 당신 삶의 한계다!

 

이 말은 언어를 바꾸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관념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프레이리의 설명 방식을 빌리면, “삶이 바뀌지 않으면 인식도 바뀌지 않는다는 관점이 객관주의(=기계적 유물론)의 오류라면, “인식의 변화는 교육을 통해 쉽게 이룰 수 있다는 관점은 주관주의(=관념론)의 오류라 하겠다.

(객관주의, 주관주의는 내가 교육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일련의 글을 올릴 것이다)

 

언어와 인식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은 태극기부대의 행동양식이나 우리 어머니 세대의 이혼에 대한 통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언어의 한계는 비단 세대의 문제, 심지어 책가방 끈길이의 문제도 아니다. 어떠한 사람도 자기 인식의 그릇만큼 언어의 한계를 갖는다. 이를테면, 초등인디스쿨(초등교사끼리 교육자료와 정보를 공유하는 누리집) 게시판에서 맑시즘 포럼을 안내하는 글 밑에 달린 댓글 가운데 일베 수준의 극우적 반응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분은 임용고시 패스해서 교사가 되었지만 지성인이라 할 수는 없다.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에서 나의 페친이신 교사들 가운데도 교사의 정치적 중립운운하시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죄송하지만, 이러한 사고 자체가 일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 분의 언어는 이 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교육의 결과다.

 

우리 언어의 한계가 우리 삶의 한계다.

그러면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언어를 변화시킴으로써 우리 삶의 변화를 꾀할 것인가?

 

- 계속 -

 

2017.7.28.

 

'이론과 실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의   (0) 2018.01.26
비고츠키 교육학  (0) 2018.01.26
온정주의  (1) 2017.09.14
리좀과 사회운동  (0) 2017.04.04
리좀  (0) 2017.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