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도식적 사고

리틀윙 2017. 2. 27. 11:29

사물을 자신의 편협한 사고틀에 기계적으로 짜 맞추어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을 흔히 '도식적이라 일컫는다. 비지성적인 사고의 전형이라 하겠다.

그러나 도식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도식이 없으면 우리는 어떠한 사고도 할 수 없다. 포토샵의 색상분포도를 캡처한 사진을 보자. 지금 작은 동그라미가 위치해 있는 지점의 색깔은 뭐라 일컬어야 할까? 오른쪽 RGB 좌표는 (230-145-63)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파고가 아닌 까닭에 이 색을 이렇게 정교하게 인식할 수 없다. 우리 눈에 이 색은 노랑과 빨강 중간의 어떤 색이므로 주황이라 일컬을 것이다. 이 때 이 색에 대한 우리의 인식체계가 도식인 것이다.

이 도식으로 우리는 이 색과 비슷한 많은 색들을 대충 주황색으로 감을 잡는다. 도식이라는 정신의 도구(psychological tool, 비고츠키의 개념)가 없으면 우리는 색을 인식할 수도 없고 또 다른 사람과 인식을 공유할 수도 없다. 우리는 피차 주황색에 대해 비슷한 인식의 도구를 품고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도식은 스키마(schema)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스키마 하면 흔히 인지심리학의 태두 쟝 피아제를 떠올리지만, 스키마는 원래 칸트가 고안한 개념이다. 칸트는 스키마를 선험적 도식으로 규정하였지만, 피아제의 스키마는 동화와 조절이라는 후천적 학습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해 간다.

영어 발음 원리를 처음 배우는 학습자는 자음 c[]로 발음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토대로 cat이나 cook 등의 단어를 읽어간다. c에 대한 자신의 스키마에 외부 자극(단어)을 동화(assimilation)시켜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학습자는 c뒤에 h가 연속으로 이어질 때는 []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동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기존의 스키마와 분열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학습자는 ch가 합쳐지면 []로 소리 난다는 이치를 깨달으며, 기존의 스키마에 대한 조절(accommodation)을 하며 정신의 평형(equilibrium)을 꾀해 간다. 그 뒤에 학습자는 nice, school, machine 등의 단어를 만날 때마다 끊임없는 조절과 동화를 통해 자신의 스키마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갈 것이다.

 

 

인지 발달이란 결국 부정의 부정(negation of negation)을 통해 기존 스키마를 부단히 수정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도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도식적 사고와 지적인 사고의 차이는 오직 도식의 정교함의 차이일 뿐이다.

 

가장 저급한 수준의 도식적 사고는 조건반사라 일컫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소유자들은 기존 스키마에 대한 변증법적 부정의 과정을 거의 밟지 않고 최초에 형성한 것을 평생토록 간직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어버이연합이 문재인이나 노무현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러하다. 이를테면 이들은 북한에 대해 약간이라도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면 무조건 종북또는 빨갱이로 규정해 버린다. 그게 왜 나쁘냐고 물으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쁘기 때문에 나쁘다는 식이다.

 

선거공학 따위를 통해 정치지도자들의 이미지 관리 전략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대중의 도식적 사고의 맹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박정희는 낮에 카메라 앞에선 막걸리 마시다가 밤에 궁정동에서 여대생과 술 마실 땐 시바스리걸을 마셨다. 후자가 본질에 가깝고 전자는 다만 현상적 측면이건만 박정희에 대한 어버이 대중의 인식은 검소한 서민대통령이다. 어벙한 어버이들이 한번 장착한 이 허구적인 스키마는 무덤에 갈 때까지 안 바뀐다. 최순실의 천문학적인 재산의 인과관계에 대해 추론하지 못한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기계적 유물론의 전형이라 할 이 단순한 설명체계가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것은..... 바로 대부분의 인간사고가 이러한 조건반사적인식에 기초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비지성적인 도식적 사고 양식은 지성인 집단이라는 교사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점이다. 적잖은 분들이 내가 마르크스나 변증법을 논하거나 하면 불편함을 느끼신다. 마르크스나 변증법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 분들이 품는 인식 수준은 어버이 연합이 문재인에 대해 품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나 변증법에 대한 이 분들의 인식수준은 조건반사적으로 획득한 첫 단계의 스키마가 전부인듯하다.

 

마르크스나 변증법이라는 외부자극을 만날 때 느끼는 불편은 정서적인 것이 아닌 인지적인 것이어야 한다. , 인지적 불균형에 평형을 이루기 위해 기존 스키마를 조절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그러해야 한다. 교사는 지성인이다.

 

2017.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