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내포와 외연: 예를 들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 같다

리틀윙 2017. 2. 27. 01:00

하나의 낱말은 인간 의식의 소우주(microcosmos). - 비고츠키

 

비고츠키와 프레이리는 공히 인간 의식의 발달을 언어에 대한 인식의 성장으로 보았다. (이게 최근 출간된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의 핵심이다.)

 

 

 

언어의 발달이 인지 발달의 핵심이라는 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바가 없는 상식에 해당하는 언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위대한 학자들이 말하는 언어의 발달이라는 건 단순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 구사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레이리 사상의 전부라 할 문해 literacy’에 관한 것이다.

프레이리에게 문해는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Reading the world with the word. - 세상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무엇으로? 낱말로!

 

프레이리와 비고츠키 사상의 교집합(공통 지점)변증법이란 개념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싶다.

변증법을 구성하는 핵심 키워드가 연관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키워드가 매개 mediation’이다. 이 단어의 의미를 모르면 비고츠키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 (매개라는 개념이 비고츠키 사상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그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정신의 도구]라는 책이 잘 설명하고 있다. 비고츠키를 공부하고자 하는 분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프레이리는 인간이 word를 매개로 world를 읽어내는 역량(=의식의 발달)을 리터러시라 설명했다. 역자후기에서 내가 썼듯이, 형식적 의미의 문해력은 대한민국 국민이 단연 세계 최고지만(세종대왕님 덕택에), 실질적 의미의 문해력은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이 밑바닥 수준이다. 이건 이 나라 교육이 프레이리가 말하는 은행적금식 교육(banking, 이 멋진 개념의 원 주인은 싸르트르다.)으로 이루어진 필연적인 결과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음 중 ~~가 아닌 것은?” 따위의 문제풀이(problem solving)를 해댈 뿐 스스로 그게 왜 그런가 하는 문제제기(problem posing)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두 학자, 프레이리(reading the world with word)와 비고츠키(microcosmos of human consciousness)를 종합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지적 성장은 낱말과 벌이는 사투로 점철된다!”

(쓰고 보니 어찌 전교조 스타일의 문체가 돼 버렸다.)

 

.................

 

지성의 단련은 인식의 주체가 낱말과 벌이는 치열한 고민의 여정에 다름 아니다. 낱말의 의미(meaning)를 이루는 두 축이 내포와 외연이다. 사물에 대해 개념을 품는다는 것은 그 사물의 내포와 외연을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영어로 내포는 connotation이고 외연은 denotation이다. (강의에서든 글에서든 내가 영어를 자주 쓰는 이유가 있다. 한자어보다 영단어가 한 낱말에 함축된 의미의 비밀을 풀어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자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구인들보다 지적 성장이 더딘 것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내 강의에서 설명한 의태라는 한자어보다 mimicry라는 영단어가 훨씬 쉽다. 물론 이 단어는 상당히 고급어휘다. 그런데, 영어가 좋은 것은 고급단어일수록 오히려 이해 또는 기억이 더 쉽다는 것이다. mimic(흉내 내다. 따라하다)이라는 단어만 알면 ‘mimicry’라는 소우주의 정복은 쉽다. 반면, ‘의태(擬態)’라는 말은 얼마나 어려운가?)

 

connotation(내포)에서 접두사 con-모으기” denotation(외연)에서 de-풀기의 의미이다. ‘내포란 쉽게 말해 한 낱말의 사전적 의미이고, ‘외연은 그 사전적 의미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예를 말한다. 따라서 내포와 외연의 관계는 연역과 귀납의 관계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개념의 획득에서 내포보다 외연이 훨씬 중요하다. 이 의의를 초등교사는 잘 안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 나왔을 때, 사전을 통해 그 의미를 풀이해줄 때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던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전에 풀이된 문장 속에서 또 다른 낯선 낱말을 만나는 점에서 아이들은 더욱 힘이 빠질뿐더러 낱말 뜻풀이가 모두 아는 낱말로 쓰여졌다 하더라도 읽고 나면 그게 뭔 말인지 쉽게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이란 시구에서 4학년 아이들은 당연히 선생님, 처마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던져올 것이다. 이에 얘들아, 국어사전 찾아볼래?” 하면 국어사전에 지붕이 도리 밖으로 내민 부분(=처마의 내포)”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그럼 아이들은 또 도리가 뭐예요?” 물을 것이다. ‘도리는 나도 모른다. 도리를 알더라도 그 놈이 밖으로 내민 부분이란 또 뭘 말하는 것일까?

이럴 때는 차라리 구글 검색기로 처마를 쳐서 이미지를 보여주면 한 방에 해결된다. “이런 게 처마야!”라 하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게에 해당하는 것이 처마의 외연이다.

 

그렇다면, 이미지로 제시할 수 없는 낱말은 어떻게 할까?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은 어떻게 이해를 하는가?

추상적 개념,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에 나오는 용어로 사상 언어 thought language’야말로 내포보다 외연의 접근이 훨씬 중요하다. ‘교육이라는 낱말을 예를 들어 보자.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기술이나 기능을 가르침

'다음 사전에서 위와 같이 교육의 내포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교육에 대한 이러한 뜻풀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도둑질이라는 특정한 목적에 대한 기술이나 기능의 가르침도 교육일까? R.S. 피터스가 알면 노발대발 할 것이다. 교육이란 말 속엔 내재적으로 가치있는 행위라는 의미가 함축(즉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이 사전적 의미(=내포)는 오류임이 명확해진다.

교육이란 개념에 대한 다음(daum) 사전의 설명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외연을 통해서였다. 이처럼 어떤 한 개념에 대한 인식의 발전은 내포적 의미보다 외연적 의미를 통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개념에 대한 예를 들 수 없으면 그건 모르는 것과 같다.”는 말을 즐겨 쓴다.

 

나아가, 그 예를 보다 실감나는 것으로 적확한예를 들 수 있을 때 최고 수준의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남을 가르칠 때 내 지식이 최고의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어떤 개념에 대해 가장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장 실감나고 적확한 예를 들 수 있어야 한다. 아인슈타인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도 같다고.

 

남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에 해당하는 가장 실감나고 흥미있고 적확한 예가 뭘 지 고민해야 한다. '외연'에 해당하는 또 다른 영단어로 'extension'이 있다. '확장'이란 뜻이다. 개념의 이해는 그 내포에 해당하는 외연의 점진적인 확장을 통해 "귀납적으로" 이루어진다. "개념에 대한 외연의 확장이 인식의 성장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낱말에 대한 내포적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그것에 해당하는 예(=외연)를 들 수가 없다. 내포를 정확히 제대로 이해하면 할수록 그 의미의 외연은 더욱 확장된다. , 더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그 외연 가운데 정수에 해당하는 적확한 예를 들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최고의 인식(=내포) = 적확한 예 들기(=외연) = 최고의 가르침 = 최고의 인식

 

뭐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를 논하려 했는데 너무 복잡하게 설명했다.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도 같거늘...

 

.................

 

일본 와서 첫 아침을 이렇게 맞고 있다.

여행 와서 논문 쓰고 있으니 나도 참 병이 심각하다.

대전 강의갈 때는 여행 가는 기분이었고 마누라랑 해외여행 가는 건 출장 가는 기분이니...

감기 치료보다 정신 치료가 더 급한 거 아닌지 모르겠다 ㅎㅎ

 

 

2017.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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