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물화된 시선으로 접한 신선한 충격

리틀윙 2017. 2. 27. 02:02

2016학년도에 영어 원어민 교사가 우리 학교로 파견 근무했다. 비록 1주일에 한 번이지만, 원어민 교사가 이 학교에 온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큰 기대로 이 분을 기다렸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얼굴은 잘 생겼는지 혹은 예쁜지, 우리 학생들에게 얼마나 성의 있게 그리고 유능하게 다가갈지 등등의 기대감 속에서...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온 그 분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십대 후반의 미국 남자였는데, 성격이 내향적이어서 아이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지 않았다. 외모도 그랬다. 백인은 아니고 흑인에 가까웠는데 자기 말로는 인디언 피가 섞인 혼혈이라 했다. 그리고 외모와 관련하여 이 분이 우리를 너무 불편하게 한 것이 있었는데...... 몸에서 심한 냄새가 났다. 외국인에게서 나는 선천적인 체취가 아니라, 몸을 씻지 않아서 나는 악취였다.

 

그런데, 이런 그가 어느 날 우리에게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비친 적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 파견 오는 요일이 월요일이었던 탓에 자연스럽게 주말에 뭐 했냐?”는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거의 매번 경주에 있는 자기 여친과 데이트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한 번은 내가 과감하게 걸프레드가 어떻게 생기신 분인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자기 스마트폰 초기화면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는데...... ! 정말 예뻤다.

 

몇 초 뒤 신선한 충격에서 빠져 나와 어떤 분석을 하게 되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이 두 남녀의 조합이 우리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여자는 백인이고 남자는 흑인과 인디언 혼혈, 즉 인종적으로 소수자에 가깝다. 미국 본토에서 이역만리에 있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 와서 자기나라 말로 돈벌이를 할 만큼 그는 경제적 역량 면에서 별 볼 일 없는 남자였다. 그리고 별로 잘 생기지도 않고 몸에서 냄새까지 심하게 나는데... 그 예쁜 백인 처녀는 왜 이 친구를 연인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그러나 다음 날 나는 위와 같이 생각한 나 자신을 깊이 반성했다.

그 여성이 그 남성에게 호감을 품을 만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자질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그 자질은 어떤 타산적인 성격의 것이 아닌 인간 본질에 관한 무엇일 것이다. 이런 사고에 미치니 그 친구에게 굉장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물화(物化)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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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 배우 김혜수씨가 유해진과 교제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 그들 커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그랬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 김혜수가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못생기고 자기보다 훨씬 무능한 조연급 배우와 정분을 주고받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사람은 김혜수 밖에 없다. 내 확신컨대, 인간 유해진에겐 김혜수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자질이 있을 것이다. 스크린을 통해서 우리 눈에 비친 유해진의 캐릭터가 아닌 인간 유해진의 본질적 측면이 어떠한가에 대해 우리는 무지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양팔저울에 두 남녀의 물질적 스펙을 올려놓고 재단한다면, 그들의 아름다운 만남에 비해 우리의 시선은 얼마나 불순하고 왜곡된 것인가?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세상에 노출된 뒤로 그 현실적 장벽을 못 넘고 파경을 맞이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뒤로 두 사람, 특히 김혜수씨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가부장 천민자본주의사회의 여배우로서 신데렐라의 꿈을 이뤄줄 돈 많은 탕아의 품에 안길 수도 있건만 이렇듯 소박하고 아름다운 로맨스를 선택한 그녀의 안목과 용기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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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항상 시대의 인간이다.

개인은 시대의 지배적인 의식에 굴절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된다. 봉건사회의 인간은 봉건적 가치, 자본주의사회의 인간은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개된(mediated) 프레임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가치는 돈의 가치로 환원된다. 이 가치방정식이 매우 적나라하게 통용되는 천박한 사회를 막스 베버는 천민자본주의사회라 일컬었다. 한국사회는 그 전형에 해당한다. 배움의 전당으로서 가장 순수한 만남과 가치관이 학습되어야 할 학교교실에 다음과 같은 급훈이 붙어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1시간 더 공부하면 마누라 몸매가(남편 직장이) 바뀐다!

 

여성의 미모와 남성의 직장이 등가물로 만나는 사회에서 남녀 간의 사랑도 교환가치로서만 성립하건만. . . 이런 사회에서 스펙 대 스펙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정을 통하는 관계가 있다면 그 자체로 아름답고 위대한 사랑이다.

 

2017.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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