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잘못된 웃음과 당파성

리틀윙 2017. 2. 27. 01:47

프레이리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비극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My dream is a society in which we can laugh with no falsity.

프레이리 선생은 우리가 바르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합니다.

 

옮고 그름은 항상 구체적으로 논해야 합니다.

웃음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간단한 한 예로, 장례식장에서의 함박웃음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나는 천민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슬픈 것이 뭐냐 물으면,

잘못된 웃음false laugh이 넘쳐나는 풍조라 하겠습니다.

38분마다 한 사람의 이웃이 자살로 우리 곁을 떠나는 세계 최고의 자살공화국에서 TV를 틀면 천박한 예능 프로들이 연신 거짓 웃음을 토해 냅니다.

 

이건 일종의 정신분열입니다.

그리고 이 소외된 웃음은 그 이면에 있는 현실사회의 모순을 은폐하고 현재의 상황(現狀 status quo)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합니다.

 

아무런 정치적 메시지가 없는 웃음 그 자체가 어떻게 정치적이냐고요?

정치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입니다.

 

갈등사태에서 중립적 입장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침묵을 지키는 게 중립적 입장일까요? 내시환관들이 국정을 농단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 덕분에 가능했고 반대로 이들이 지금 위기에 몰리고 철옹성 같은 삼성공화국의 총수가 구속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의 성장에 힘입었습니다.

손석희가 강호동 같았더라면 촛불이 이렇게 위력적이지 않았을 것이고, 반대로 강호동이 손석희 같았더라면 훨씬 빨리 좋은 세상이 왔을 겁니다.

 

추한 사회, 부조리한 세상에서 모든 입장은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는 것과 그것을 바꾸는 두 입장 가운데 어느 한 편을 들게 되어 있습니다. 철학 용어로 당파성 partisanship’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비판적 입장과 달리 웃음을 선사하는 일은 당파성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나는 정치적으로 현상 유지를 위한 편에 서 있다고 밝히는 것은 덜 나쁩니다. 정치적이지 않음을 가장한 정치적 입장이 무섭고 경멸스러운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그런 입장을 취합니다. 언제나 죄악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2017. 2.24.

'삶과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화된 시선으로 접한 신선한 충격  (0) 2017.02.27
아이 졸업식  (0) 2017.02.27
강의 후기  (0) 2017.02.27
영어공부에 관해  (0) 2017.02.26
빠따의 추억  (0) 20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