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관계다. 삶은 관계다. 교직살이는 관계다.
관계는 만남이다. 만남이 없으면 관계도 없고 참다운 교육도 없다.
만남이란 무엇인가? 그냥 만나기만 하면 되는가? 얼굴 보고, 눈만 마주치면 되는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만남은 만남이랄 수 없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은 매일 마주치지만, 1년에 따뜻한 대화 한 번 나누지 않는다면, 이 관계에서 만남은 없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교과서 펴서 공부하고 숙제 내고 검사하고 시험 치고 점수 매겨 알려 주고... 이런 식의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만남은 없다.
교사들끼리도 그렇다. 매주 월요일 오후 3시에 직원협의회, 수요일 2시부터 연수회에서 만나는데, 매번 똑같은 페르소나를 쓰고서 똑같은 역할극을 반복한다. 이 속에서 건강한 관계를 뜨개질 해 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의 발전이 소강상태에 빠지거나 타성에 젖을 위험이 있다.
이 같은 위험을 예방하고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선 어떤 ‘국면의 전환’이 요구된다. 어항 속의 수중 생태계의 건강을 위해 물을 갈아 주듯이, 사람들의 관계망도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관계의 활성화를 위한 가장 좋은 이벤트는 ‘여행’이다.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혼자 나서는 여행은 개인을 성장시키고 같이 나서는 여행은 관계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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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른 학교는 배구하러 갔지만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대구 나들이를 갔다.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었다. 저녁 마치고 일부 선생님들끼리는 커피숍까지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다부 선생님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언제나 ‘학교살이’다.
올해 새로 오신 20대 후반의 여선생님께 학교살이가 어떤가 물었더니, 처음엔 미소 띤 얼굴로 말을 풀어 나가시더니 나중엔 눈물을 훔치신다. 만날 때마다 웃는 얼굴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상냥한 목소리와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시는 씩씩한 선생님이 그간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으면 그랬을까 싶다. 이 작은 울타리 내에서 그간 우리의 관계맺음은 ‘만남’이 아닌 ‘마주침’이 전부였던 것이다. 선배교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눈물로 우리를 무안하게 만든 것이 미안했던지 연신 ‘다 내가 무능해서 그렇다’는 자책성 멘트를 되풀이 하신다.
깊이 있는 철학이나 굳은 심지가 다져진 상태는 아직 아니지만, 따뜻한 눈길로 아이들을 어루만질 줄 알고 최선의 수업을 위해 늘 노력하는 자세가 참 보기 좋은 후배교사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퇴근도 늦게 하시는 성실한 분이다. 사실, 무능하지 않은 교사가 어디 있나? 자신이 부족함을 알고 더 나은 교육실천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체로 이 분이야말로 괜찮은 교사임을 나는 확신한다.
영화도 음식도 별로였지만, 이 선생님을 새로 발견할 수 있어서 오늘 여행은 기쁨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보다 더 설레고 유익한 일도 없다. 삶은 관계다.
2016.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