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론

언어와 성평등

리틀윙 2016. 12. 28. 14:03


2년 전 오늘 포스팅 한 영상을 보며 ‘성평등’을 생각한다.

5대5로 남녀 이어달리기 성대결을 펼치는데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을 이기는 풍경이다. 작년까지 다부에서 줄곧 4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재작년의 이 아이들도 그렇고 작년 아이들의 경우도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기가 더 셌다.

신체적으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이기는 것은 예외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그것도 4학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질 면에서 여자 아이들이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교육의 힘이 크다. 다부초가 특별히 성평등한 교육을 지향하는 것도 있지만 내 생각으론 가정적 배경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 학교 어머님들 가운데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다.

비단 다부초 아이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성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내가 첫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이삼십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해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여자 아이가 축구 하는 것이나 남자 아이가 여학생과 같이 노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놀이나 스포츠 경기에서 남녀 간의 구분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를테면 여자 아이가 축구에 흥미를 붙이거나 할 것 같으면 “여자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말을 들은 아이가 위축받을 것은 당연하고 축구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은 (심리학 용어 '강화'의 반대개념으로) “소멸”되는 것이다.



하나의 낱말은 인간의식의 소우주이다.

 

비고츠키의 이 말은 개인의 의식 발달 차원에서 논해지는 것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낱말은 그대로 그 사회의 의식과 문화 수준을 말해준다.

여자가!”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내뱉어지는가 하는 것이 성평등 수준의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다행스러운 것은 초등학교에서 이 말은 확연히 소멸되어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성평등을 지향하는 노력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데 이웃나라인 일본은 어떤지 늘 궁금했다. 그런데, 어제 일본어 공부하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다.

대화 속에서 젊은 여성이 자기 형부를 지칭하는 말로 언니 남편이 아닌 언니의 주인(主人)’이라 일컫는 것이다. 전국시대도 개화기도 아닌 현대 일본사회에서 이런 용법이 아직 쓰이고 있는 것이 충격이다. 일본을 잘 모르지만, 한 여성의 남편을 슈진(주인)으로 부르는 사회에서 성평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낱말은 인간의식의 소우주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내용은 이렇다.

젊은 여성이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데, “아버지는 회사일이 힘들다면서 집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해요. 우리 언니의 주인(형부)도 회사원이지만 가끔 집안일을 돕는데 말예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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