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과 똑같은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만약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다면 장애인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를 겪지 않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이해하는 최선은 잠깐이라도 장애인이 되어 살아보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장애이해 교육에서 눈에 안대를 가리고 시각장애인이 되어 보는 추체험 학습을 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여성의 입장에서 살아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내가 만약 지금 성전환이 이루어져서 여성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미쳐버리지 싶다. 그 근거로 수백 가지를 들 수 있지만 최근 일상에서 겪은 세 가지를 논해본다.
1.
KTX 타고 서울역에 내려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남자 화장실과 달리 여자 화장실에는 화장실 바깥까지 사람들이 줄을 쭉 서있다. 내가 여성이라면 참 창피하고 화가 날 것 같았다. 인간의 품위를 유린하는 처사다. 진정한 평등은 ‘동등 equality’가 아니라 ‘형평 equity’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입각하여 적어도 대중이 많이 이용하는 공공건물의 여성화장실은 남성화장실보다 더 크게 지어야 한다.
2.
오늘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렸더니 내 글에 찬성하는 많은 여성 분들이 호의적인 댓글을 달아주셨다. 고맙다거나 대견하다는 반응이다. 순간, 내가 만약 여성이라면 똑같은 글을 올렸을 때 여성이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과 또 남성 벗들이 내게 공격적인 정서를 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최근 불꽃페미 단체가 행한 퍼포먼스를 보면서 처음으로 ‘브래지어’에 대해 짧은 생각을 품게 된다. 브래지어는 여성이 아닌 남성을 위한 것이다. 봉건 중국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의 성욕에 복무하게 하기 위해 어린 여자 아이의 발을 꺾어 더 이상 발이 커지지 않게 한 ‘전족’과 같다.
여름철에 브래지어를 찬 여성들이 얼마나 수고로울까 생각하면 남성으로서 미안해진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 브래지어를 차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20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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