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어도
비가 와도
내 몸과 마음은 도서관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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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다른 도서관 열람실도 몇 군데 가 봤는데, 분위기가 비슷하다. 어디서나 ‘관계없음’에 기초한 작은 부조리들이 넘쳐난다.
한 사람이 두 자리를 차지하는 몰염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해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놈이” 두 자리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여성 취준생에 의한 뻔뻔스러운 작태를 보기는 어렵다. 1인2석 차지도 남성이고 지우개 가루 어지럽히고 치우지 않는 것도 남성이다.
어제는 화장실 휴지통에 저런 식으로 개념 없는 저지레 해 놓고 간 녀석도 남성이다. (다행이 성인이 아니라 중딩이다. 중학교 모의고사 시험지가 증거). 매너는 둘째 치고 이런 사고로 무슨 공부를 한다는 건지?
반면, 이 무덤 같은 도서관에서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몇몇 사례는 모두 여성의 몫이었다.
“신용카드 잃어버리신 분, 1층 경비실에 맡겨 놓았으니 찾아가라”는 친절한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적어서 출입문에 붙여 놓은 분도 (엊저녁에 내가 잃어버린 카드다!)
(예전 글에 소개했던) “한 사람이 두 자리 점하지 말자”는 공동체 의식을 호소하는 글귀를 남긴 사람도 여성이다.
(글씨로 미루어 두 사람이 여성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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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경상도 남성인 나는 지독한 가부장적 집안에서 자라 남근중심의 사고가 강한 편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실천적으로 이론적으로 치열하게 부대끼면서 어느 정도 극복해 가고 있지만 지금도 알게 모르게 비합리적인 가부장적 의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런 내가 봐도, 우리 사회는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 추한 사회라는 생각이다.
도처에 이명박스러운 남성동물은 늘려 있지만, 박근혜스러운 여성은 잘 보기 드물다.
대관절 무슨 공부를 그렇게 요란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무슨 전투에 나가는 군인처럼 완전군장 태세로 열람실에 입장하는가? 가방도 아닌 배낭에 책을 한보따리 넣어 와서는 옆자리에 턱 올려놓는다.
여성이 이러지 않는 것은, 힘이 없어서 그런 방만한 책보따리를 들고 오지 못해서일까?
정말 괘씸하고 한심한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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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가끔씩 ‘내 인생은 왜 이리 운이 안 따르는가?’ 하는 생각을 품곤 한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것도 불운이고,
흔해빠진 진보교육감 밑에서 교사로 근무해보는 운도 따르지 않는다.
그런 내가 어쩌면 유일하게 건진 운이 있다.
이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다.
이 지독한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떠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 불같은 성질에, 내가 만약 여성으로 태어났으면 미쳐버렸지 싶다.
남근 왕싸가지들이 즐비한 도서관열람실을 찾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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