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에콜로지

생태

리틀윙 2016. 10. 11. 09:29

학교에 제일 일찍 온 아이가 “박쥐가 복도에 있다”고 내게 알려 왔다.
속으로 약간 두렵기도 하고 꺼림찍했지만, 겉으론 태연한 척하며 현장으로 출동했다. 복도에 쓰려져 있었다. 시골학교에 있으면 이른 아침 학교에서 때 박쥐를 자주 만난다. 녀석은 밤새 활동하다가 날이 밝아오면 맥을 못 춘다. 아마 자신의 은신처를 찾아 헤매다가 저렇게 조난당한 것으로 보인다.
“집이 어디냐”고 물어 볼 수도 없고 해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이용해 포획한 뒤 학교 앞뜰 어두운 부분에 놓아 주었다. 카메라에 담으려고 폰을 가지러 갔다 오니 그새 어디에 몸을 숨겼다.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쉽지만 다행이다. 녀석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시골학교에 근무하면 가끔씩 야생의 생명체들과의 조우로 난처할 때가 많다. 가장 흔한 경우가 교실에 벌이 들어오는 것인데, 아이들이 벌 피하느라고 수업 분위기가 망가진다. 이 불편한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은 간단하다. 벌을 잡으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이 내 양심에도 거슬릴 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생포하거나 창문을 열어 나가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교실에 늘 잠자리채를 두고 있다.
동물은 지구라는 울타리 안에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다.
동물형제들의 불행은 절대적으로 인간의 탐욕에 말미암는다. 영화 쥐라기공원에서 티라노사우르스라는 괴물이 인간동물을 해치려할 때 우리는 그 가공할 폭력과 공포에 전율한다. 중생대는 공룡이 지배하던 시대였고 현대는 인간이 만물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인간은 어떠한 공룡보다 잔인하고 탐욕스럽다. 공룡은 생태계를 파괴시키지 않았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 착한 동물도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양심과 이성이라는 것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것도 인간이고 학대하지 말자고 외치는 것도 인간이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고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도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더 많이 길러내는 희망이 바로 교육이다.
학교에서 생명존중교육, 생태교육은 창백한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생생한 삶 속에서 교사가 본을 보여야 한다. 기본적인 것으로서 1회용품 사용 자제하기, 교실 전기 아끼기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직원협의회 때 “빈 교실에 전깃불 안 끈 학급 있다”고 잔소리 하던 꼰대 교장들이 그립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것이다.
아니 보수의 반대개념인 진보의 속성이 그러하다. 간디가 말하듯이...
진보는 단순화이다!


2016.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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