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좋은 수업 -3) 영어몰입교육 비판

리틀윙 2015. 11. 30. 11:17

앞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교사가 수업을 잘 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상식적 의미로 잘 가르친다는 뜻을 비껴갈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배움이 있는 곳에선 반드시 의문이 일기 마련인 법, 학생은 교사에게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영어든 수학이든 잘 가르치는 교사란 학생들의 지적 궁금증을 시원스레 해소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 이게 상식이 아닐까?

그런데 상식적 의미로 실력이 없는 교사들은 질문을 기피할 것이고 그런 교사에게 학생들도 묻기를 멈춘다. 문제는 이런 교사도 뭐 얄궂은 수업모형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서 시범수업을 번드레하게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업과 관련하여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수업모형이 아니라 교과에 대한 지적 역량과 교육학적 소양이라는 것. 더 이상 이야기 안 할 것이다.

 

계속해서, 배움의 속성이 동적이 아니라 정적이라는 것을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비판과 결부지어 논해 보겠다.

 

이에 대해 논하자면, 학습심리학의 이론을 빌려오는 것이 좋겠다.

학습이 일어나는 원리에 대한 가장 간명한 설명 방식은 S-R이론으로 이른바 행동주의 모형이다.

어제 내가 거론한, “빙고!”라는 교실에서의 학습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뭐 이게 문제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이명박의 어린쥐(orange)가 낳은 영어몰입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수업방식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걸 배움이라 일컫고 싶지 않다. 이건 그냥 학습이다. 파블로프의 개 수준의 학습이다.

이렇듯 이명박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퍼부어 가며 영어교실을 딱 자기 수준으로 전락시켜 놓았다.

 

TEE나 영어몰입교육이 뭐가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논해보겠다. 나는 영어교육을 전공한 적이 없기에 관련 이론 따위는 모른다. 다만, 영어교육자로서 그리고 오래도록 남달리 영어 공부를 해온 학습자로서 나의 경험에 근거해 관점을 피력할 것이다.

 

첫째, 문법이나 독해보다 말하기를 강조하는 현행 영어교육과정은 7차교육과정 이후 우리 교육의 근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구성주의와도 정면적으로 배치된다. 구성주의의 학습모형은 자극(S)과 반응(R) 사이에 유기체(O)가 추가되어 (S-O-R)이 된다.

그럼에도 언어학습의 특성상 조건반사적 학습원리에 의존하는 것은 정당하다 할 지 모르겠다. 문제는, 조건반사에 의해 말을 익히기 위해선 수천 수만 번의 반복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주당 2~3시간의 영어수업으로는 택도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시스템 상으로 영어몰입교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기회비용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영어교육에 퍼부은 예산의 규모가 얼마쯤 될지 모르겠으나 현장에서 영어를 담당한 교사의 입장에서 돈이 너무 많이 내려와서 주체하기 힘들 정도였다. 지역의 영어거점학교에 내려온 막대한 예산을 연말까지 다 못 써서 담당자가 궁여지책으로 짜낸 묘안이, 원어민 교사를 태워 아이들과 함께 경주 보문단지에 갔다 온 것으로 영어몰입교육한 것으로 보고할 정도였다.

학교에서 영어교육 예산을 물 쓰듯이 쓸 때 독거노인에게 지급하던 난방비가 삭감되어 불우한 노인들이 추위에 떨었던 것을 생각하라.

만약, 이 영어몰입에 쓰는 막대한 예산의 절반 정도를 예술몰입교육에 쓰거나 스포츠강사 채용비로 쓴다면 학교폭력이라도 엄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영어몰입으로 인해 교육적으로 잃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도 한 때 영어집중연수를 받을 때 한 6개월 동안 셀프 영어몰입에 힘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영어에 몰입하면 할수록 한국어에 대한 감각이 둔화되어 가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외국에 살거나 유학차 외국 물을 먹은 사람들이 한국말 도중에 영어 단어를 끼워 넣어 국적 불명의 어법을 구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른도 이러한데 아직 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초등학생의 경우는 어떨까? 초등 현장교사들은 영어몰입으로 파생되는 이러한 심각한 역기능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사설 영어학원 열심히 다녀 영어는 제법 떠드는 아이가 우리 말 표현은 굉장히 어눌한 경우가 많다.

 

넷째, 학교 영어수업만으로는 아이들이 따라갈 수 없다.

말하기와 듣기를 강조하지만, 읽기와 쓰기를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영어몰입이라는 미명하에 읽기와 쓰기 학습은 일사천리로 휘리릭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이 결과, 4학년에 올라온 아이들 가운데 알파벳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4학년부터는 영단어 읽기가 나오는데, 학원에서 파닉스를 배우지 않는 아이들은 못 따라 갈 형편이다.

영어몰입이라는 명분하에 학교 교실에서는 맨날 빙고!” 외치면서 아이들이 즐겁게 영어를 배우지만 알파벳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그 과업은 사설학원이라는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이건 명백한 직무유기인 것이다.

 

옛날과 달리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슬픈 현실에 가장 많이 일조하는 것이 이 영어교육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을 굽어 살피는 선량한 교육자라면, 직무유기의 도덕적 가책을 느껴 빙고!”를 줄이고 파닉스를 가르쳐야 한다.

 

끝으로, 조건반사에 의존한 야단법석 학습을 통해 아이들 영어실력이 얼마나 느는지 모르지만, 학습자(O)의 구성적 사고(성찰)는 없고 자극과 반응 밖에 없으니 이놈의 영어몰입 이후 무뇌아 NO BRAIN”가 양산되고 있다.

실컷 뛰 놀며 신체도 마음도 건강하게 성장할 나이에 영어학원에 처박혀 꼬부랑 글자 배우느라 받는 스트레스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지 모른다. 천문학적인 국가예산이나 사교육예산의 낭비는 차치하고 말이다.

내 주관적인 경험적 판단이지만, 영어가 초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아이들 표정이 덜 밝고 스트레스 탓에 ADHD니 틱 장애니 하는 각종 병리현상이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영어몰입인가?

 

마침 오늘이 한글날이구나. 세종대왕님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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