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좋은 수업-5) 영어몰입교육 비판 2

리틀윙 2015. 11. 30. 11:19

하나의 낱말은 인간 의식의 소우주다. - 비고츠키

 

비고츠키 이론의 핵심은 언어는 특정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언어의 보편성, 즉 기표와 기의의 결합의 필연성을 부정하는 소쉬르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문화적 경험이 다르면 언어적 의미도 다른 것이다. 또한 특정 문화권에서만 존재하는 인간 경험을 지칭하는 낱말은 다른 나라 말로 치환할 수 없다.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때 이런 걸 많이 느낀다. 이를테면, 곰탕 국물이 구수하다거나, 사우나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때 시원하다 할 때, ‘구수하다시원하다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외국인과 소통이 안 되었던 경험이 있다. 반대로, 영어를 우리말로 옮김에 있어 문화적 차이 때문에 적당한 우리말 표현을 못 찾거나 아예 독해가 안 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맥락에서 영어몰입교육을 생각해보자.

언어와 문화의 양립성 때문에 영어의 바다에 빠지기(=몰입) 위해 영어 문화에 빠지는 것은 필연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어식이 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초등학생이나 심지어 유아들에게 영어몰입을 시키는 게 어떨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영어연수 받을 때, ‘결정적 시기 critical period’라는 개념을 들었다. 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하는 결정적 시기와 비슷한 것인데, 이 결정적 시기에 영어몰입을 시키면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결정적 시기에 익혀야 할 필수적인(critical) 과업 가운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는가? 우리말과 우리 문화 익히기다.

 

영어몰입교육은 (자극-반응)에 터한 조건반사적 학습이 전부다. 이 묻지마 학습이 학교 안팎으로 과도하게 진행된 결과, 무뇌아들이 양산되고 있다. 유딩부터 대딩까지 사설학원교육으로 도배된 우리 시대의 아이들이 가슴은 없고 머리만 발달해 있다고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마저 없다. 성찰의 안받침이 없이 조건반사적 학습만 열심히 해온 필연적인 결과라 하겠다.

 

차라리, 콩글리쉬로 문법과 독해 위주로 배우던 우리들 시절의 영어수업이 백배 더 바람직하다. 지난 글에서 내가 젊은 여교사와 나이 많은 남교사의 영어수업을 비교한 것도 이 맥락에서였다. 게임 위주로 말하기 훈련을 강조하는 영어수업에서는 파블로프의 개 수준의 학습은 일어날지언정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소시 때 나는 성문종합영어에 나오는 주옥같은 명문장들을 접하면서 지적 희열에 전율했던 기억이 있다. 아울러 존 레넌의 훌륭한 노랫말을 영어사전 뒤져가며 우리말로 옮기면서 영어 실력을 키워 갔다. 지금 나는 영어소설이든 철학서든 사회과학서적이든 영어사전 없이 원서를 독파해낸다. 물론 진부한 콩글리쉬 교육이 나를 이렇게 성장시켰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남다른 영어 역량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 팝송과 성문영어에 나오는 귀한 문장들을 통해 영어에 대해 품었던 흥미덕분인데...... 나의 이 흥미는 빙고!”의 흥미와는 클래스가 한참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다. 둘의 차이는 S-RS-O-R의 차이다. 학습자의 성찰이 결여된 묻지마 학습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일 뿐이다.

더욱이, 주당 2~3시간의 수업으로는 조건반사적 학습조차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그리고 머리와 가슴은 안 움직이고 묻지마 식으로 말하기 역량을 기른들 앵무새 같은인간이 외국인을 만나 어떻게 유능한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말은 혀끝에서 발화되기 전에 머리와 가슴에서 출발한다. 머리에 든 것이나 가슴에 품은 것이 없는 무뇌아가 무슨 인간의 말을 한단 말인가?

(TEE에 쫄아 스피킹 역량 기를 요량으로, 몇 년 전에 구미지역의 회사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프리토킹 동아리에 나간 적이 있다. 삼성/엘지에 다니는 청년들의 영어회화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문제는 그 분들이 학습 자료로 삼는 프리토킹의 주제가 전부 시사적 이슈로서 낙태 문제나 북한 문제 따위였는데, 이런 것들은 인문학에 관한 소양이 없으면 의견 개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어로 된 지식이 없으면 영어도 안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중대한 커밍아웃 하건대, 이런 까닭에 나는 TEE 수업 안 한다! 대신 아이들에게 수시로 팝송 가르친다. 6학년 아이들에게 톰 존스의 [그린 그린 그래스 옵 홈]을 가르치면서 사형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을 나누곤 한다.

그건 영어 수업이 아니라고?

이명박 시절엔 그랬다. 그러나 지금 융합교육과정 시대에서 그런 수업은 권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201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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