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좋은 수업에 관하여 -1

리틀윙 2015. 11. 30. 11:12

한 중학교에 두 영어 교사가 있다. 두 사람은 같이 1학년 학생들의 영어수업을 담당하고 있지만, 많은 면에서 서로 비교가 된다. 한 사람은 젊은 여교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이 많은 남교사다.

 

영어 수업과 관련해서도 두 사람은 대조를 보인다.

젊은 여교사는 요즘 영어교사에게 강조되고 있는 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수업)에 능한 반면, 나이 많은 남교사는 TEE가 익숙치 않으며 그 나이의 영어교사들이 대개 그러하듯 발음도 후지다.

여교사는 젊고 예쁜데다 수업도 신식으로 한다. 수업 때마다 게임을 배치하는데 교실은 학생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이 교사가 수업하는 교실을 지나치는 교사들은 수시로 학생들이 외치는 "빙고!" 소리를 듣게 된다.

 

두 교사에 대한 학생의 반응은 어떨까?

모두가 예상하듯이, 젊은 여교사는 인기 짱이고 연로한 남교사는 찬밥이다. 급기야 남교사가 담당하는 학반의 학부모들 가운데 별난 몇몇이 교장실을 찾아가 "우리 애 영어선생 바꿔 달라"는 민원을 넣기까지 한다. 물론 이 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당사자인 교사에게 큰 상처를 안겨다 줬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남교사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전혀 색다른 평가가 들려온다. 이 교사가 외고에 근무할 때는 학생들로부터 유능한 영어교사로 평판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법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이 교사에게 물으면 다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같이 근무하고 있는 원어민 교사도 인정하는 바였다. , Mr. Lee의 영어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1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는 무능한 교사로 푸대접을 받는 교사가 똑똑한 외고 학생들이나 본토 원어민교사로부터는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두 교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더 낫다는 판단은 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평할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자 할 뿐이다.)

 

교사의 자질을 수업이라는 척도로 가늠할 때, “수업을 잘 한다는 것이 뭘 뜻하는지 냉철히 생각해보자.

 

위의 여교사는 “(교육청이 선호하는)수업 잘 하는 교사의 전형에 해당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잘 하는 수업에서 학생의 배움이 잘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회의한다. 사토 마나부가 지적하듯이, 배움이란 야단법석의 형태로 일어나지 않는다. 배움은 차분하고 진지한 지적 탐색과 성찰 속에서 일어난다.

 

사실, 배움의 속성이 동적이기보다 정적이라는 것은 어떤 심오한 역설적 진리가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이 위선 투성이의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일반인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학교현장에서는 이 상식적 가치가 전도되어 시끌벅적한 상황을 연출해야좋은 수업으로 인정되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 단호히 말하건대, 모든 공개수업은 show time이다!

 

교사들이여 제발 쇼를 멈추자. 이 가식적인 역할극을 끝내자. 그리고 기본으로 돌아가자! 상식으로 돌아가자!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수업을 잘 한다는 말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을 잘 가르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이 허구적인 학교 상황을 벗어나 차라리 사설학원으로 시선을 향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 집 아이가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비싼 돈 주고 학원 공부를 시키고 싶다 치자. 여러분이 부모라면, (이를테면) 시범 수업은 잘 하지만 평소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하는 교사와 그 반대의 교사 가운데 누구에게 아이를 맡기겠는가?

 

수업은 오락이 아니다. 교사는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물론 즐거운 가운데 진지한 배움이 일어난다면 최고의 수업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겸비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이 글을 통해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양자택일(either-or-not)이 아니라 선차성(priority)의 문제다.

 

수업 잘 하는 교사는 쇼를 잘 하는 교사가 아니다. 연중 단 한 시간의 쇼타임 때 수업관찰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교사가 아니라 1년 내내 총체적으로 학생들에게 뜻 깊은 가르침을 전하는 교사이어야 한다.

잘 가르침의 문제는 일단상식적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학생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교사의 자질을 말한다. 상식적인 의미의 실력이란 이런 것이다. 수업모형이나 수업 기법의 문제는 이 상식을 간과하고서 논의될 수 없다. 따라서, 좋은 수업을 위해 교사는 열에 아홉은 실력 쌓기에 치중해야 한다.

 

어떤 식의 수업이라도 배움은 항상 진지한 형태로 일어나지 야단법석의 형태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학생의 배움에서 교사의 지적 역량은 절대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러하다. 공자가 삼빡한 수업모형으로 학생들을 현혹시켜서 최고의 스승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2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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