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업에 관하여 -2

수업에 관해 못 다한 이야기를 좀 더 내뱉고 싶다.

 

어제 영어수업의 예를 들었다. 실제 상황이지만, 젊은 여교사와 나이 든 남교사를 대비시킨 구도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중등학교의 이모저모에 대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내가 품는 관점의 한계마저 느꼈다.

이 글에서는 내 전문영역인 초등 영어수업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또한 내가 경험한 사례 중심으로 논지를 펼치고자 한다.

 

초등에 영어가 정규교과로 들어온 것이 1998년 쯤 되지 싶다. 내 나이 꽃다운(?) 30대 중반이었다. 현장에 막 영어가 도입되니 누군가 영어를 맡아야 했는데 그 시절에 우리 동기들이 영어 전담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알기로 영어 실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겁도 없이” 영어를 떠안고선 심지어 교육청에서 의뢰하는 시범수업을 맡아 여러 학교의 영어 담당 교사들을 불러 놓고 수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의 수업 도중에 사달이 났다. 시청각 자료를 이용하기 위해 TV 화면을 켜는데 작동이 되지 않아 뜻하지 않은 소강상태를 맞게 되었는데 교사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한 아이가 “선생님, ‘고장났다’를 영어로 어떻게 말해요?”라고 물은 것이다. 지금 젊은 교사들에게 이 정도야 별 거 아닌 질문이겠지만, 그 당시 우리 동기들 수준에선 교사를 난처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It’s out of order.”를 떠올리지 못해 난감해 하던 그 교사의 표정이나 수업 관찰자 모두가 민망해 했던 당시의 상황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긴장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답을 못했다고 해서 일 교사의 무능을 예단할 순 없다. 학생이 던지는 모든 질문에 시원스런 답변을 주는 교사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네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교사를 평가한다. 악의적으로 교사를 테스트한다는 말이 아니다. 진지한 배움의 장이라면 학습자의 입장에선 질문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법이다. 첨에 한두 번 질문을 던졌을 때 교사가 시원스레 답변을 하면 아이들은 다음 수업 때도 계속 질문을 할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교사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이런 교사가 어떤 질문에 대해 즉답을 주지 못할 때, “내가 공부해서 다음 시간에 가르쳐 줄게”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신뢰를 철회하지 않는다. 반면, 질문을 귀찮아하고 별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않는 교사들은 아이들도 알아서 모신다. 더 이상 질문을 안 하는 것이다. 대신 이런 교사에게 아이들은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질문이 없는 교실은 교실이 아니다. 다음 글에서 논할 ‘call & response’가 없는 수업은 수업이 아니다.

 

아이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않아서 질문을 던지지 않는 교실에서 삼빡한 수업모형으로 교사와 학생 간에 ‘역할놀이’를 그럴듯하게 수행하면..... 좋은 수업인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단, 이 말 앞에 단서가 붙어야 한다. 교과와 관련한 교사의 지적 역량보다 엔터테이너로서 시범수업이라는 쇼타임을 잘 진행하는 것을 능력이라 평가하는 현재의 허구적인 학교 풍토 하에서는..... 그렇다!

 

위의 시범 수업 주인공 교사도 재수없게 TV가 고장 나지만 않았어도 성공적인 수업 시연을 했을 것이고 평가회에서 좌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 이러한 쇼가 가장 잘 통하는 수업이 영어수업이다.

초등영어 수업은 참관자들 앞에서 아이들 데리고 놀기 좋은 수업이다. ‘게임’을 배치하면 기본적으로 십분은 때울 수 있다. 노래가 좀 되는 사람은 ‘송’으로, 율동이 되는 사람은 챈트를 배치하면 된다. 그 외 역할극도 있다. 한마디로 초등영어는 “교사는 적게 떠들고 아이들끼리 야단법석을 떨면서 자기주도적으로 학습 한마당을 펼치는” 식이어서... 수업과 관련하여 교육청이 강조하는 권장사항의 모든 레시피가 담겨 있어 흡사 컵라면처럼 제조가 쉬운 요리인 것이다.

 

그러나 컵라면을 음식이라 칭할 수 없듯이, 이런 수업은 수업이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배움은 야단법석의 형태로 일어나지 않는다.

 

2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