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속 들여다보기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리틀윙 2014. 12. 14. 19:48

1학기 어느 날 음악 수업시간이었다.

감상 단원에서 <라데츠키 행진곡>을 가르치는데, 교과서에서 작곡자를 소개하면서 요한 슈트라우스 1라 적어 놓았다. 내가 설명하면서 요한 슈트라우스 1세라는 말은?” 했더니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서 답하기를...

한 살!!!

나는 너무 우스워 그만 빵 터졌다. 다른 아이들은 어리둥절해 있다. (올해 우리 반 10 명의 아이들 가운데 썩 똘똘한 아이가 잘 없다.)

 

내가 아이들을 향해 “1세라는 말은???”이라 할 때는 “2세도 있다.”는 대답을 유도할 의도였건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반응을 못하는 가운데 용감한 한 아이가 그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사실, 1세란 수식어는 필요가 없다. 예전 교과서에는 라데츠키 행진곡의 작곡자로 그냥 요한 슈트라우스로 나왔다.)

 

그런데 이 아이가 며칠 전에도 나를 웃음 짓게 하였다.

 

 

진로적성검사를 한 며칠 뒤 결과지가 도착했는데 아이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뭔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모두들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나열된 여러 가지 직업 이름 가운데 아이들에게 생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일일이 공책에 정리해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직업명에 대한 이해를 해 가는데, 이 아이가 자기 결과지를 들고 내게 다가와 묻는다.

 

선생님, 제가 라디오'가 될 수는 없잖아요? 이거 잘못 된 거 아닌가요?”

 

○○지도자, ○○관리사, ○○치료사, 대학교수, 라디오/TV방송프로듀서, ......

 

아뿔사, 슬래쉬(/)라는 기호가 초등학생에겐 너무 어려운 상징체계인가?

 

...................

 

다부에 와서 이런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혁신적 마인드를 갖지 않은 많은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을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작년엔 그랬다. 나의 경우는 이 학교 아이들이 문제집은 멀리하면서 독서를 많이 해 굉장히 창의적이고 똑똑한 아이들인 줄 알았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교육목표가 엘리트 만들어내는 것에 있지는 않다. 우리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 가면 적응을 못할 애들이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하며 건강하게 성장해 간다. 이게 다부의 훌륭한 교육역량이다. 물론 하향평준화라는 측면에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맥락에선 자제!)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내가 20여 년간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무엇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깨닫게 된다. 실로 선생 된 지 20여 년 만에 다부를 통해 이 사실을 깨닫는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에서 저자(엄훈)도 그런 지적을 한다. 중학교 1학년생인 창우는 글을 못 읽는 아이이다. 이런 아이에게 학교 수업이 고역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심성이 착한 이 아이는 수업을 방해하거나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지 않고 수업을 따라 간다. 아니 따라가는 척 하는 것이다. 그 나름의 생존전략을 저자가 적고 있다.

 

 

모르면 물어야 한다. 묻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사람이 바보같은 사람이다.

교실이라는 배움의 공간에서는 학생이 모르는 것을 자유롭게 물을 수 있는 지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다부는 그런 곳이다.

 

이곳 다부의 아이들은 교사가 다루기 벅찬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교사의 감정을 극도로 상하게 하는 악동들도 많다. 우리 반도 그렇다. 어떤 아이는 심히 교사를 힘들게 하지만, 또 어떤 아이는 진정 교사를 행복하게 만든다. 1세가 한 살을 뜻한다는 이 아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이다. 자신의 조그마한 잘못에도 늘 죄송합니다, 선생님하고 또 교사의 작은 배려에도 늘 고맙다는 인사말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아이이다이런 아이들이 있어서 올 한 해 학급살이는 행복했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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