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속 들여다보기

한자어 2

리틀윙 2014. 9. 15. 12:45

 

 

우리말은 한자어가 망쳐 놓는다.
초등 2학년 교과서인데, 제법 똘똘해 보이는 아이인데도 소아과를 소화과(소화청소년과)로 적었다. 아이의 이러한 관념 작동에 근거로 삼았을 그림에서 의사가 환자의 배를 진찰하고 있으니, 아마 ‘소화가 안 돼서’ 라는 상황을 연상해서 ‘소화청소년과’라고 쓴 것 같다. 아마 담임선생님께서 '소아청소년과'라 불러 주니 아이가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 적었을 것이다.

 

내 소시때 영어가 어려웠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영어가 아닌 한자어 때문이었다. ‘관용어구’니 ‘부정사’니 하는 말들이 왜 그렇게 어려웠던지... to-부정사라 하는데 도대체 얘는 뭘 잘못했길래 부정적(negative)인 호명이 붙여졌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됐다. 부정사의 부정은 네거티브가 아닌 infinitive(否定)임을 알게 된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최근 청소년의 70퍼센트가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을 북침으로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순간 또 전교조 욕 나오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좌경화 교육의 탓이 아니라 아이들이 북침이란 말을 “북쪽에서 침공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도 헷갈린다. 북침은 남이 북을 침공했단 말인지, 북이 남을 침공했단 말인지...

 

우리 반에 어떤 아이는 4학년 사회에 맨 첨에 나오는 어려운 개념어인 ‘등고선’이란 말을 자꾸 ‘고등선’으로 인식한다. 아이의 입장에선 ‘고등~’으로 시작하는 말(고등학교, 고등어)에는 익숙해 있으나 ‘등고~’란 말은 낯설으니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높이가(고) 같은(등) 지점을 이은 선(선)이란 뜻이니 ‘고등선’이라 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소쉬르가 입증했듯이, 등고선이 고등선이 아닌 등고선으로 불리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한자어 땜에 아이들 공부가 어려워진다.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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