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교사에게

대화적 관계

리틀윙 2014. 10. 26. 17:17

무릇 교육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맺음을 근간으로 이루어진다 할 때, 이 둘 사이의 관계형성은 결코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교사-학생의 관계맺음은 교사가 주도권을 쥐되 양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양방향의 관계맺음을 브라질 교육사상가 파울루 프레이리는 대화적 관계라 일컬었습니다. 프레이리의 대화(dialogue)세계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정의됩니다. 프레이리는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실존주의 교육철학자 볼노브(Bollonow, O.)의 명제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프레이리의 대화 개념에 영향을 끼친 만남(encounter)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 방식은 '-'의 관계와 '-그것'의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의 관계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한 ''와, 마찬가지로 대체 불가능한 ''가 상호 신뢰에 바탕한 만남을 가집니다. 이에 반해, '-그것'의 관계는 상대방의 존재를 '기능적인 어떤 것'으로 여깁니다. 이때 상대방은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 언제든 다른 대상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나의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로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학교 현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맺음은 점차 나-너 관계에서 나-그것의 관계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학교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아닌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고 교육이 교육상품으로만 의미를 갖는 현실 속에서 교사-학생의 만남이 물화(物化 reification)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울한 현실을 탓하면서 인간화 교육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설령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그것의 관계로 보더라도 교사는 학생을 -관계맺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프레이리는 말합니다. 세계와 인간을 향한 따뜻한 사랑은 대화의 토대인 동시에 대화 그 자체라고 말이죠. 사랑과 겸손, 신념에 뿌리를 둔 대화가 만들어 내는 수평적 관계에서는 교사-학생 사이에 상호신뢰의 싹이 틀 겁니다.

 

대화적 관계는 학급경영이나 생활안내(생활지도)에서 뿐만 아니라 교수-학습 활동에서도 필수적입니다. 사토 마나부는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 따라 공부배움을 구별짓습니다. ‘공부가 만남과 대화 없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습을 의미하는 반면, ‘배움은 만남과 대화에 바탕한 진정한 의미의 학습을 뜻합니다. 사토 마나부는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만남과 대화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 학생은 사물(대상세계)과 만나고 타자와 대화하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앎을 지평을 넓혀 갑니다. 하지만, ‘공부에서 학생들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적을 올리기 위해 문제집과 씨름합니다. 학생들이 사물 혹은 세계와 만나는 게 아니라 문제풀이를 만날 뿐입니다. 삶과 교육이 동떨어져 있으니 공부가 어렵고 재미가 없습니다. 또한 배움에서 학생들은 또래 학생들과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가지만 공부에서는 급우들을 경쟁상대로 배척해 갑니다.

프레이리의 대화교육론에 영향을 받은 사토 마나부의 공부-배움의 대비는 프레이리의 은행저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과 문제제기식 교육(problem-posing education)과 닮은꼴입니다. 은행저금식 교육의 전형은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의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한국 학생들이 초기에는 우수한 학업 역량을 발휘하다가 점차 상급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뒤쳐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어서라고 합니다. , 한국 학생들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주어져도 밤잠 안 자고서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냄으로써 외국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하다가도, 막상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일(problem-posing)에는 무능을 보이고 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자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냈듯이, 인류 지성사에서 위대한 발견은 대개 자신과의 대화를 얻어지는 법입니다. 한국학생들은 사토 마나부가 말하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 자기 스스로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해본 경험이 부족하니 고차원적인 배움에서는 두각을 못 내는 것입니다.

학생의 배움에서 대화적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비고츠키도 교육적 대화(educational dialogue)라는 개념으로 역설한 바 있습니다. 비고츠키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 상호간에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그가 대화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학습은 결국 학습자가 스스로 의미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고츠키는 교육적 대화가 의미 있고 효과적이도록 집단 규모를 적정화 할 것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자유롭게 교육적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료 학생들과의 소통하기 좋도록 좌석 배치도 적절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동적 배움이 원활히 일어나기 위한 집단의 규모는 4명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교사-학생, 학생-학생 간의 대화적 관계와 유지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실 내의 민주적인 사회적 관계망의 형성입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어떠한 질문도 자유롭게 던질 수 있어야 하며, 동료 학생끼리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을 위한 상호작용을 활발히 나눌 수 있는 대화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수직적인 만남이 아닌 수평적인 만남,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이어야 합니다. 학급내의 인간관계가 교사주도의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지면 교사가 편하긴 합니다. 중등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순한 아이들을 다루는 초등교사는 분명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사의 행복 이면에 선량한 아이들의 스트레스와 억눌림이 숨죽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초등교사는 교실이라는 왕국의 피그말리온왕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뜨개질 해나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과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위해 대화적 관계맺음이 요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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