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진보와 보수, 그리고 도덕성

리틀윙 2014. 8. 9. 10:35

문명과 격리된 아마존에서 야생의 삶을 영위하는 원시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예전에 만난 한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교장선생님은 근검절약 정신이 아주 철저하신 분이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전깃불 끌 것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이고, 공문 인쇄할 때는 반드시 양면 인쇄를 하게 했다. 뒷면이 백지로 되어 있는 공문을 들고 오면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집에서 쓰던 이면지를 학교에 들고 와 재활용하여 결재를 맡곤 했다. 심지어, 학급에서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버릴 때 반드시 종이류는 빼고 순수한 쓰레기만 담아 버릴 것을 종용하셨는데, 학급 담임들을 못 믿었는지 교문 앞에 버려진 쓰레기봉투를 일일이 풀어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은 세 봉투의 쓰레기를 두 곳에 모아 한 장의 봉투를 아끼는 식으로 철두철미한 내핍의 본을 보이시곤 하셨다. 이런 교장선생님의 휘하에 있는 교사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 한 장에 벌벌 떠는 지나친 근검절약 정신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그러한 내핍 정신이 사리사욕으로 연결되고 하진 않았다. 쓰레기봉투 한 장 아끼려고 그렇게 애를 쓰시는 분이 아이들 위해 써야 할 돈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셨다. 그 분이 돈 관계가 깨끗한 분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다. 그리고 수업 종 치고도 빨리 들어가지 않고 학년연구실에서 잡담 나누기에 바쁜 교사들에겐 눈을 흘기시던 분이,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이 인사를 건네면 활짝 웃는 얼굴로 그래~ 반갑다. 니는 몇 학년이고?” 라며 화답하시던 교장선생님은 그 연세의 다른 교장들에 비해 정말 괜찮은 분이셨다.

 

보수적인 경북에서 그래도 리버럴한 구미에서 칠곡으로 건너오면 권위적이고 비효율적 구태가 만연한 교육행정 분위기에 모든 교사들이 갑갑증을 느낀다. 나도 첫 해에는 직원협의회 때마다 벌떡 교사가 되어 학생교육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이런 짓을 왜 해야 하냐고하면서 교장/교감을 불편하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지역에서 교장/교감을 힘들게 하는 강성적인 전교조 교사로 관리자세계에서 입소문이 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이 교장선생님과의 인연을 계기로 내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학교 돈에 눈독 들이지 않는 교장을 처음 봤다. 그리고 교사들에게 깐깐하게 대하면서도 아이들에겐 자상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둘은 필연적 연관이 있다는 성찰이 들었다. 

관리자는 기본적으로 학교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학교 관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상은 교사 관리다. 물론, 교사를 억압하고 주눅 들게 하는 그런 파쇼적 관리가 아니라 상호신뢰와 존중에 기반한 민주적 리더십으로 소통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와 함께 했거나 내가 아는 대부분의 교장들은 독재 아니면 방임의 형태를 취한다. 특히 과거의 나처럼 못된(?) 전교조 활동가가 있는 곳에서 교장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되든 교사들과 그저 마찰을 빚지 않고 얼른 큰 학교로 옮겨갈 생각만 품는다. 

 

경북에서 제일 선진된 초등학교 중 하나인 현재 내가 근무하는 이 학교에서는 관라자들이 교사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관리자들을 관리하는 형국이다.

이곳에선 모든 게 자유롭다. 물론 교사가 자유로워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사물은 언제나 발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을 함께 지닌다. 자유가 방임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철저한 자기규율이 뒤따라야 한다. 사실 그게 쉽지 않다. 

 

나와 딱 1년을 근무하고서 정년퇴임을 하셨던 그 교장선생님,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다리가 불편해 늘 지팡이에 의존해 요즘 같은 여름날 약간만 걸어도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시던 분, 그러면서도 선생들 수업 똑바로 하는지 관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계단을 오르내리시던 그 분... 오늘따라 그 교장선생님이 그립다. 

혼자 있는 교실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면서 청도와 밀양의 송전탑을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형광등만 제대로 소등해도 핵발전소 하나 덜 지을 수 있다. 

A4용지 한 박스(2만장 되려나) 만드는데 40년생 나무 한 그루를 베어야 한다. 한국의 교육청 때문에 쓸데없는 교육실적물 양산해내지 않으면, 우리 교사들이 종이 아끼기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아마존의 밀림이 덜 파괴될 것이고, 자연과 더불어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마존 원주민의 평화로운 삶을 보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진보는 실천이다.

실천 따로, 삶 따로 있지 아니하다. 삶과 유리된 실천은 위선이고 가식일 뿐이다자기 이해관계에는 급진적이고 까칠하며 삶 따로 실천 따로인 자족적 진보가 될 바에야 차라리 나는 도덕적인 보수가 되고 싶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4/08/01/story_n_56400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