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운동과 삶

리틀윙 2014. 3. 15. 11:51

   2년마다 아파트 자치회장 선거를 연다. 2012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인데 그 해에 선거관리위원장이란 걸 맡았더니 이번에도 또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수락했다. 누군가가 맡아 수고를 해야 하는데, 조직사회에서 잔뼈가 굳은 사람에게 이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기 삶터에서 이런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선거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다. 먼저 각 동별로 대표를 뽑은 뒤에 그 대표 가운데 자치회장을 뽑는다. 동대표는 50%의 주민이 투표에 참여하여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하는데, 투표소 차려 놓고 주민을 기다리면 50%의 투표율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래서 선관위원들이 투표함을 들고 집집마다 방문해서 투표를 받아야 한다. 이 일이 어렵다. 이 일이 어려워서 선관위원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어두컴컴한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러 사람을 불러내는 게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공무수행이라는 명분에 힘입어 짧은 시간이나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이 에스노그라피를 통해 배운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아파트 평수에 따라 사람 사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2012년에는 40평대 동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20평대 동을 맡았다. 이곳에선 말 못 하는 장애인과 소위 다문화 주부도 만났다. 문을 열고 빼곡 내민 얼굴 모습이 너무 앳돼 보여 중학생 딸인가 싶었는데 우리 남편 없어요.”라는 어눌한 말소리로 형편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평소 명품 가방 들고 씩씩하게 다니던 아주머니가 20평대 동에 살고 있는 것을 알고서 놀랐다. 실내 온기가 싸늘한 것이 애처러워 보였는데, 아주머니는 가스비를 아껴서 명품을 사는 것일까? 그러면 몸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해지는 것일까......

 

동대표 투표를 마치고 선관위원끼리 회식을 가졌다. 서로를 드러내는 자리이다. 전교조지회장과 교육학박사라는 프로필이 적힌 명함을 건넸다. 50대 중후반의 한 남자 위원이 내 명함을 보고 소스라친다. “아니,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십니까?” 이런 대단한 일을 하냐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을 하냐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가진 선량한 교사가 왜 전교조 일을 하는지 자기로서는 납득이 안 갔던 모양이다. 박정희가 반인반신으로 통하는 동네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반응이고 또 거꾸로 그런 점을 노렸다. ‘이런 사람이 전교조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이 전에 가졌던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나는 적절한 고급어휘를 섞어가며 능숙하게 의사를 진행해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었다. 이 말은 그 때가 전교조 명함을 건네는 적절한 타이밍이란 뜻이다. 박정희의 고장이어서가 아니라 전교조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악화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어제 자치회장 선거 개표를 끝으로 선관위원의 임무를 마쳤다. 임기는 2년이지만 보궐선거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무가 종료되는 시점이다. 해산식 겸 회식을 했다. 1차 마치고 그 양반이 한 잔 산다고 해서 둘이서 맥주집으로 갔다. 예상대로 그 양반의 주된 화두는 박정희와 전교조였다. 나는 박정희를 안 좋아한다고 했더니 박정희대통령이 아닌 그냥 박정희라 일컫는 내 어법에 반감을 표하며 나더러 종북 아니냐고 묻는다. 이석기와 이정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심문한다. "아주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라고 답변하니 흡족했던지 건배를 제안해서 박치기! 술이 몇 잔 돌고 나자 이번에는 천안함에 관한 취조(?)가 들어온다. 나는 북한을 싫어하지만 천안함은 북한의 작품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정색을 하며 역시 종북이라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물론 농담)”고 지랄 떨길래, (그래 시발놈아) “신고해라하고선 일어서서 나와 버렸다.

 

 

이런 무시무시한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건물 바로 옆에 우리 학교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속 그 양반이 생각났다. 그래서 컴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사실 그 분이 특별히 꼴통인 것은 아니다. 국정원 부정선거가 밝혀져도 또 간첩조작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도, 어떠한 언어도단의 부정과 비리가 불거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이 사회 자체가 꼴통이 아닌가? 경상도 지역뿐만 아니라 호남지역과 (근소한 차이의) 서울을 뺀 나머지 한국땅 전체에서 이 꼴통 정권을 지지하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진보라 떠드는 사람들의 지지기반은 얼마나 초라한가? 그렇다면, 진보는 대관절 어디에서 자기 뿌리를 내릴 것인가?

그 분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균형잡힌 정치적 시각을 갖지 못한 것을 빼고는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 우리 아파트 발전을 위해 돈 안 되는 선관위 역할을 맡아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려 하는 점에서 말로만 진보외치며 술만 퍼마시는 운동꿘보다 훨씬 나은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대다수의 민초들은 이 분처럼 종북이니 하는 잣대로 사람을 예단하진 않는다. 생활 속에서 만난 전교조교사의 헌신성을 보면서 전교조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양반조차 나와의 접촉을 통해 전교조와 진보에 대한 생각을 아주 작게나마 새로 해볼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고? 그러면 진보 가운데 꼴통은 없는가? 그런 꼴통들 생각이 쉽게 바뀌던가? 나는 꼴통진보보다 꼴통보수 바꾸기가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삶과 운동이 따로 놀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운동하는 보람도 흥미도 자기발전도 없다. 삶이 운동이고 운동이 삶이어야 한다. 운동이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민중이라 일컫는 우리 이웃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과 소통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늘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면서 정작 민중을 우리 세상으로 초대한 적이 없다. 초대해서 안 오면 왜 안 오는지 반성하고 계획을 수정하여 다시 시도해봐야 한다. 그래도 안 오면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 운동이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황당하게도 우리는 늘 설득이 필요 없는 사람들하고만 소통을 한다. 운동 현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바운더리는 한계가 뻔하다. 서로 잘 통한다는 이유로 같이 술을 마시고 책 읽고(음주와 공부의 비율은 거의 91 수준) 한다. 가끔씩 의미있는 사업을 배치하여 실천해보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의 면면은 술 같이 마시는 사람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해도 힘이 빠지고 투자에 비해 소득이 빈곤하니 운동하는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늘 같은 면면끼리 모여 술 마시며 박근혜와 새누리당 씹는 것에서 위로를 찾는다. 대통령을 과격하게 씹어대면 그게 진보적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참여사회진보니 하는 명분으로 모이지만 사실상 운동이란 게 동네 계모임 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이다. 새누리당 산하의 바르게살기운동본부는 바르게 살지는 않아도 한 번씩 골목길을 쓸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