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전교조의 희망 2030선생님들에게

리틀윙 2013. 6. 30. 01:30

지회장입니다.

지난 ()에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작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며칠 간 바빠서 이제야 드립니다. 감사의 인사말과 함께 선배 교육동지로서 제가 2030 후배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현재의 전교조를 침체기라 합니다. 전교조의 위기라 합니다.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 원인을 짚어 봅니다.

 

첫째, 학교현장에서 전교조가 존재감을 상실해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당대의 전교조가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라 생각해봅니다.

 

1989528일 전교조가 태동했을 당시의 교단은 암울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인근 학교에서 임신한 여교사가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아이들 보는 앞에서 운동장을 돌리는 교장도 봤습니다. 요즘 교권이 무너지니 어쩌니 하지만 사실 그때는 교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지금의 교권은 소수의 학부모와 아이들로 인해 침해를 받고 있지만 그 당시 교사들의 인권과 자존은 학교장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에 의해 짓밟혀갔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바로 이 같은 언어도단의 교육현실을 배경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전교조 노랫말처럼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 그리고 진리를 갈망하는 참교사들이 분연히 일어선 것입니다.

 

굴종의 삶을 떨쳐 /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 참교육 외치니

 

노태우 군사정권의 입장에서 수십 년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굴종의 삶을 살아온 교사들이 노동조합 설립과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주창하며 집단적 저항을 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독재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죠. 그래서 무자비한 탄압이 이어졌습니다.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는 교사는 해직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1500명이 사랑하는 제자들과 생이별을 하며 교단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 분들은 하나같이 학생-학부모들로부터 존경 받는 분들이었습니다.

 

 

 

 

전교조 깃발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탈퇴각서를 쓴 교사들은 19604.19 이후 근 30년 만에 타오르기 시작한 교육운동의 기운을 확산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을 전개해갔습니다. 그 시절 학교관리자(교장, 교감)의 첫째 관심사는 지금처럼 학력이나 학생생활문제가 아니라 자기 관리 하에 있는 교사가 전교조 활동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전교조 교사들은 흡사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하듯이 숨어서 활동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전교조는 독립군이고 교장/교감은 친일순사처럼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상부에 보고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소임으로 여겼습니다. 당시엔 그 문제가 교장/교감의 입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운 나쁘게 자기 학교에 전교조 교사가 있으면 교육청으로부터 좋은 근평 받는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교장이 윗선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또 다른 잣대는 단위학교 교사들의 교련(현재의 교총) 가입률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 전교조 교사들은 비밀리에 활동을 했는데, 교련을 가입하지 않는 교사는 곧 전교조 교사로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내가 전교조 활동에 가담하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억지 춘향으로 교련에 가입해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교육현장을 현재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전교조이지 교총은 아닌 것입니다. 제 초임시절이었던 당시 교총은 교련(대한교육연합회, 대한교련)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교련은 교장에 의한 교장을 위한 교장의교원단체였습니다. 관리자의 편에 서서 승진의 길을 가려는 부류가 아닌 대다수의 교사들은 전교조 편이었습니다. 비록 교장에게 미운털 박히기가 두려워 몸은 교련에 들더라도 마음은 전교조에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명박 정권 이후)이나 전교조가 권력으로부터 모진 억압과 고초를 겪고 있지만 한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 전교조를 성원하고 지지하는 교사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 전교조가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그 한 가지는 서두에 말씀 드렸듯이 당대의 전교조가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10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버티면서 1999년 합법화와 더불어 전교조는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그 뒤 전교조는 단체협약을 통해 교직사회의 구태와 악습을 혁파해 나갔습니다. 우리의 선배 선생님들 가운데 비조합원이신 분들도 살다 보니 이런 세월도 오는구나!” 하시며 전교조 만세!”를 외쳤습니다. 사실, 이것만 해도 전교조는 당대에 할 일을 다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거 노예처럼굴종의 삶을 살았던 교육자의 존재양식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누가 뭐래도 전교조의 몫입니다!

 

 

계속해서, 전교조가 위기에 봉착한 두 번째의 이유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인과관계를 알아야 전교조가 교육희망의 구심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은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다거나 전교조가 지나치게 정치투쟁을 지향한 탓에 초기에 전교조를 지지하던 국민대중이나 교사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해갔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초심이니 정치투쟁이니 하는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논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량한 교사들과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성원과 지지를 받았던 전교조 초심의 실체는 앞서 제가 말한 언어도단의 교육현실을 혁파하고 교사의 열정을 아이들을 위해 쏟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교조는 그것을 일정 정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전교조의 과오는 초심을 버린 것이 아니라 초심을 실현한 이후의 후속조치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2의 참교육운동을 전개하지 못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 삶에서 모든 문제는 곧 정치적인 문제로 귀결되는 법이어서 교육정치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낡은 교육구조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교사가 정치적 슬로건을 내거는 것은 정도의 문제일지언정 그 자체로는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어떤 식이든 전교조가 국민대중과 교사집단을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은 큰 불찰입니다. 이는 전교조의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노선 설정 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전교조의 무능과 과오가 근본적으로 낡은 운동방식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교조의 구태와 악습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 원인으로 종파주의를 논했습니다.

종파주의는 음지의 문화입니다. 이는 사회운동 또는 교육운동을 비밀리에 거행할 수밖에 없었던 파쇼 군사정권기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 칠흑같이 암울했던 시기에는 몰래 운동하는 것이 자랑이었고 또 존경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기는 오래 전에 가고 없습니다. 지금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진보와 보수가 이분법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예전처럼 전교조교사는 절대선, 관리자는 절대악이라는 이항대립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복잡다난한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낡고 단순한 방식으로 투쟁만 부르짖는 운동은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현 전교조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이래서는 교사대중은 물론 조합원들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 편이 호응하지 않는데 어떻게 맞은 편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전교조의 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수구언론이 악의적으로 전교조의 과오를 침소봉대한 탓도 큽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불리한 환경과 악조건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뼈를 깎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혁신해가야 합니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교조는 교육희망입니다. 이명박 이후 학교가 예전의 암흑기로 회귀해가고 있지만, 이는 한편으로 전교조가 되살아날 수 있는 호기임을 뜻합니다. 기회가 위기이고 위기가 기회라는 역설의 이치는 다름 아닌 전교조의 역사가 잘 말해줍니다. 전교조는 어려울 때 범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반대로 잘 나갈 때 전교조에 대한 대중의 애정과 신뢰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위기의 교단을 구출하고 살인적인 경쟁교육체제를 희망의 교육공동체로 바꿀 수 있는 주체로 전교조 외에 다른 집단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들이 전교조의 희망입니다!

전교조의 거듭나기, 2의 참교육운동의 성공은 2030선생님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전교조에 애정을 갖는 만큼 전교조가 약진하고 또 이 나라 교육이 발전해 가리라 믿습니다.

선생님들의 전교조는 기존 4060의 전교조와 달라야 합니다. 원컨대 젊디젊은 우리 선생님들께서는 이 선배들을 닮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노쇠한 전교조를 더욱 젊게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든 그게 정답이리라 믿습니다. 우리 지회는 여러 선생님들이 원하시는 것은 뭐든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의 바람과 불만 그리고 조언을 새겨 듣기 위해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자세를 낮추고자 합니다.

 

뜨거운 애정과 연대 그리고 신뢰를 보내며 긴 글을 접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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