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멘붕에서 벗어나기 –1

리틀윙 2012. 12. 23. 01:05

  박근혜 당선 이후, 이른바 진보진영이나 진보를 지향하는 선량한 이웃들이 모두 정신적 공황의 늪에 빠져 힘들어 하고 있다.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나도 박근혜씨가 이 나라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사람이라 생각하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 한 가지는, 박근혜씨가 그의 아버지가 1972년에 그랬던 것처럼 체육관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 시켜서 대통령 선출 하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선거를 통해 그것도 과반수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박근혜를 찍었을까?

이 나라 52%의 국민이 박근혜를 선택했다. 내가 사는 대구-경북권에서는 80%의 시민들이 그를 찍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아파트 앞집과 윗집 그리고 아랫집 이웃 모두가 내가 그토록 경멸하고 한심해 하는 후보를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 분들은 전두환 같은 살인마도 아니고 용역깡패 고용해 약한 노동자들을 짓밟는 악덕 자본가도 아니다. 그냥 선량한 우리 이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 분들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품을 줄도 알고 또 작은 헌신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더 추가하면, 이 분들은 대체로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전두환 같은 역사의 죄인들이나 이건희 같은 재벌들 그리고 서울 강남 졸부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왜 가난한 보통 사람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동일한 정치적 지향성을 갖는가 하는 점에 대해 우리는 진지한 성찰과 분석 그리고 연구를 해야 한다.

1219이후 멘붕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의 결론은,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경상도인들 욕 하지 말지어다. 민주당 후보는 서울과 호남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패배하였다. 서울의 경우도 경미한 수준의 우세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지만, 박근혜 찍은 사람들, 우리 일상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윤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도 특별히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 분들을 욕할 수 있을까? 나의 이런 생각은, 오늘 페북에서 접한 문재인보다 박근혜가 약간 더 나을 것 같아서 찍었는데 왜 내가 또래들로부터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받아야 하나하는 20대 여성의 글을 통해 더욱 확신을 굳히게 된다.

물론, 모든 유권자들이 나름의 정교한 논리에 입각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투표에 참여했다고는 나도 생각지 않는다. 문재인 빨갱이라는 오륙십대 유권자나 5.18 광주를 폭동으로 규정하는 이십대의 역사 인식에는 크나큰 이성적 벽과 인간적 실망 그리고 적개심까지도 품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분들과도 감정적 대립은 무익할 뿐이다. 그리고 이성적 토론도 정면적으로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삶 속에서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먼저 맺을 일이다. 우리의 진정어린 실천을 기반으로 인간적인 신뢰를 먼저 이룬 다음에, 그들의 자존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특히 책가방 끈이 짧은 분들에겐 주의) 조금씩 조금씩 설득을 해나가야 하니...... 이것이 우경적 실천이다.

나의 선량한 이웃이 내가 볼 때 그릇된 관념에 매몰 되어 있다면, 그래서 내가 그들의 의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면, 우선 내가 관련 분야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위에서 내가 말한 전두환도 이건희도 아닌 가난한 이웃들이 왜 자발적으로 수구정당의 지지자가 되는가하는 사회현상이 생겨나는 인과관계에 대한 이론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충 책을 끌쩍이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을 해나가야 한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1219멘붕을 벗어나기 위한 이론 공부로 그람시와 신영복을 추천한다.

 

(실천-우경적, 이론-좌경적, 이 말을 오해하실 분이 적잖을 것 같아서 덧붙여 둔다. 신영복의 이 말에서 '우경적'이란 '융통성 있게, 허용적으로'라는 뜻이고, '좌경적'이란 '엄밀하게, 냉철하게, 철저히' 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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