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집회문화에 대한 소회

리틀윙 2012. 8. 21. 16:37

   운동 조직에서 집회를 여는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일 것입니다.

 

 

1. 투쟁의 상대에게 일정한 타격을 가하여 기대한바 목적을 달성하는 전략

2. 조직이 뜻하는 바를 세상에 널리 알려서 우호적인 연대의 폭을 확장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선전/선동 전술

3. 집회를 통해 조직원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교육적 목적

 

 

그런데 내가 볼 때 전교조에서 여는 대부분의 집회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내외적으로 반감만 불러일으키는 자충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oo일에 도교육청 앞에서 가졌던 일제고사 반대 집회도 그렇습니다.

 

 

1.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 수가 100명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100명이 아니라 200명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도교육청이 눈 하나 깜짝할까요?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타격을 가해 어떤 이득을 챙겼던가요?

 

 

 

 

2.

군사독재정권 시절과 달리 현재의 한국사회는 벌써 오래 전에 그람시가 말하는 시민사회에 진입해있습니다. 공안정국 시대와 시민사회 시대에서 운동의 방식이 달라져야 하건만 현재까지 우리 사회 운동권의 집회 방식은 2-30년 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육자 노동조합인 전교조가 낡은 노동 운동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외부적으로는 물론 내부 조합원들로부터도 호응을 얻기 힘들 것입니다.

 

 

- 중략 -

 

 

 

참으로 부끄럽습니다.우리 땜에 고생하는 경찰 보기에 미안하고 교육청 문을 나서는 장학사들 보기에 쪽팔립니다.누구든 제발 나의 이 돼먹지 못한 자조적 한탄이 잘못 되었노라고 반론 좀 제기해주기 바랍니다.

 

지회장인 내 눈에 이렇게 비쳤는데, 일반 조합원들은 그런 행태를 어떻게 이해할까요?하물며, 길 가는 시민들은 이런 전교조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이 밑줄 친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못하면 이런 집회는 두 번 다시 안 열어야 합니다. 이런 무의미한 광란의 굿판은 전교조에서 사라져야 합니다.우리가 집회란 이름으로 광장에서 외치는 투쟁의 언어들은 일종의 자폐증이라 나는 봅니다.

 

 

 

 

 

 

 

 

보십시오. 저기 경찰통제선안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자폐) 있잖아요. 폴리스라인이 없는 본부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조합의 집회는 항상 시민들을 왕따시킨 채 선수들끼리 벌이는 자폐적 굿판입니다. 시위를 영어로 ‘demonstration’이라 하는데 이는 뭘 시범적으로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민들에게 뭘 보여준 적이 있습니까? 시민들의 짜증과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 우리가 언제 집회를 통해 그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 적이 있습니까?

시민대중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 채 우리끼리 투쟁사를 주고받는 것은 말하자면, 설득을 해야 할 사람들은 왕따 시킨 채 설득이 전혀 필요 없는 내부자들끼리 공허한 구호만을 주고받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회적 울림이 없는 집회는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입니다.

 

 

 

 

3.

집회를 통해 조직원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교육적 목적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습니다.

선수들은 상경투쟁 같은 대규모 집회를 흔히 에 비유하더군요. 뽕 맞으러 서울 올라간다는 말을 합니다. 일상의 실천이 제대로 안 풀려 의기가 저하되어 있을 때, 상경투쟁에 참여하면서 힘을 얻어 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거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운동권이 바로 이것 때문에 망한다고 저는 봅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이 을 맞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편 중독자가 됩니다.

무기력증은 체력 강화 운동을 하든지 독서나 학습 그리고 토론을 통해 지성을 단련함으로써 돌파해가야 합니다. 내가 볼 때 현재 운동판을 이끄는 사람들은 이미 중독자가 되어 있습니다. 습관처럼 집회 열고 허공에 대고 투쟁외치고선 집회 마치고 감자탕에 소주 그리고 당구장으로 이어지는 재미로 운동판에 몸담고 있는 듯합니다.

지적 단련에는 힘쓸 생각은 않으니 아는 것이라곤 집회 열고 투쟁 외치는 것뿐입니다. 한심한 것은 이걸 실천이라 자부하면서, 이런 관성적인 노가다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태도입니다.

집회가 조직원들의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을 하려면, 집회에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일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집회에 평범한 조합원들을 데리고 오면 그 날 이후로 조합을 탈퇴하겠죠. 평범한 조합원들은 이런 집회에 오지도 않고 또 안 오는 게 바람직한 꼴이 됩니다. 집회는 늘 선수들의 몫으로 남는 거죠. 현실이 이러하다면 과연 이 집회를 통해 무슨 교육적 목적을 꾀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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