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밀양을 다녀와서

리틀윙 2013. 10. 6. 19:39

 

어제 밀양을 다녀왔다.

밀양은 한자로 密陽인데, 이창동 감독은 영화 <밀양>의 영문제목을 ‘Secret Sunshine’으로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 신비로운 이름이 결코 허구가 아닌 것은 밀양의 산천을 돌아보면 누구나 실감하게 된다. 밀양역에서 내려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아득한 언덕 위에 멋진 누각이 보이는데 연세가 지긋한 택시기사 어르신으로부터 그게 영남루라는 것을 배웠다. 진주 촉석루와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에 속한다고 한다. 또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제주도의 주상절리를 연상케 하는 멋진 기암절벽이 눈에 들어오는데, 지금 인터넷에서 조회를 해보니 그 이름이 농암대이다. 내가 어제 있었던 구례리가 바로 농암대를 끼고 있는 마을이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sangablue/17442027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xovudtkehd/43 

 

 

이 아름다운 산천 위로 곧 세계최고의 고압전선이 흐를 예정이다. 신비의 고장 밀양의 일부 마을이 죽음의 땅이 되기 일보직전에 있다. 이 푸근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상대로 저항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거동이 불편한 할매들이다. 산꼭대기에서 송전탑 공사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외부세력의 도움을 받아도 그것을 막아낼 역량은 없어 보인다. 지금 이 분들이 강구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는지,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한전 직원들이 송전탑으로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막고자 하는 것이 이들이 펼치는 저항의 전부였다. 몇 분의 할매들과 마을사람들이 외부세력의 도움을 받아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에서 진을 치고 한전직원들의 출입을 맨몸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농성장의 할매들이 입고 있는 조끼의 등에 무슨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735이다. 그런데 숫자 뒤에 K가 달려 있다. 그러니까 735볼트가 아니라 맙소사 735천볼트인 것이다. 전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전압수가 높을수록 전기 이용 효율성은 높은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가 1980년대 말에 가정용 전압을 110V에서 220V로 바꾼 것도 효율성의 차원이었다. 그러나 220V는 후진국형 전기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220V를 쓰지 않는다. 효율성은 좋지만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203,340배에 해당하는 735,000V는 얼마나 위험할까? 220V의 가전제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파의 위험에 대해서도 민감한 우리 소시민들이 735천볼트의 전기가 내 집 지붕 위나 내가 경작하는 논밭 위로 지나간다면 그 누가 투사가 되지 않겠는가? 이들의 저항이 외부세력의 사주에 의한 준동이라는 말은 힘없는 할매들을 두 번 죽이는 망언일 것이다.

 

735천볼트의 전기가 인근 마을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청년동아리라는 블로거의 글을 인용해 본다

... 765kV라는 전자파가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수치만 비교해보자. 국제암연구소는 이미 고전압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154kV 송전탑에서 측정되는 전자파만 하더라도 몇 년 안에 암이 발병하여 죽을 수 있는 정도다. , 345kV 송전탑은 비가 오는 날이면 소음이 커져서 인근(30~80m) 마을은 창문도 열어놓을 수 없으며 심지어 불꽃이 튀는 현상도 발생한다. 이러니 765kV 송전탑은 그 피해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주민들의 입장에서 송전탑의 건설은 한마디로 마을의 죽음을 뜻한다. 현재 이 동네는 땅을 내놓아도 부동산에서 받아주질 않는다. 땅값이 0원이라는 이야기다. 한전에서 보상을 적절히 해주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 밀양송전탑 저항 과정에서 분신자살하신 고 이치우 어르신의 경우, 시가 69000만 원이 넘는 논의 보상금으로 한전에서 87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닌 듯하다. 삶의 끝자락에 서 계시는 어르신들이 평생을 살아온 안락한 삶의 터전을 떠나 보상금 몇 푼 손에 쥐고서 어딜 가서 사시겠는가?

 

 

 

그러면, 한전측에서는 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이 살인적인 고압전선을 설치하려는 것일까? 이걸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송전탑을 흐르는 전기가 핵발전소를 돌리기 위해 설치된다는 것이다. , 핵발전소와 밀양/청도 송전탑이 연동되는 것이다. 효율성의 논리가 지속가능성의 원리를 압도할 때 어떠한 재앙이 벌어지는가는 우리는 이웃한 후쿠시마가 잘 말해준다. 그리고 핵은 효율적이지도 않다. 원전의 수명은 30년이다. 전기를 써먹는 기간은 30년인 반면, 핵을 폐기하기 위한 기간은 30만년이 걸린다. 30만년 안에 뭐가 잘못되면 한 방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밀양 할매들의 고통을 우리가 외면하면 안 되는 도덕적인 이유가 있다. 밀양송전탑과 이어지는 고리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수혜자는 수도권 주민들이다. 대도시 사람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이 아름다운 마을이 폐허가 돼도 좋은 것일까? 이게 효율성이란 논리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편안한 잠을 잘 때 불편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이웃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편안이 이웃의 불편과 맞물려 있는 것이라면, 우리에겐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지 않다. 어제 비탈진 곳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가기 위해 텐트 칠 땅을 고르는 작업을 분주히 하는 주민들을 뒤로 하고 돈 몇 푼 손에 쥐켜 주고 농성장을 떠나온 내 마음이 참으로 편치 않다. 더구나 그 분들의 걱정대로 오늘 새벽부터 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나의 벗님들, 언제 주말에 밀양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자연경관이 정말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그리고 송전탑 할매들의 구수한 경상도 말씨와 소박한 정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작은 발걸음이 이들에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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