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의식

욕설의 리얼리즘

리틀윙 2013. 9. 29. 15:36

  어렸을 적에 누가 욕설이나 거친 말을 내뱉었을 때 어르신들이 그러면 못 쓴다. 그건 상놈 짓이다.”라곤 하셨다. 그때 우리는 상놈이 어떤 놈을 지칭하는지 모르지만 아주 질이 안 좋은 사람을 일컫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배우면서 상놈의 상()자는 보통이라는 뜻으로서 상놈常民의 다른 이름인데, 주로 양반이 상민을 향해 경멸조로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상놈이란 표현은 양반놈의 계급의식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어법인 것이다. 방금 이 문장에서 상놈이란 표현은 괜찮은데, ‘양반놈이란 표현에 대해서는 불편한 느낌이 든다면 이것은 그릇된 관념조작 - 이게 이데올로기이다 - 의 결과이고, 그것은 우리 쓰는 용어법이 계급적으로 공평무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 시대의 지배적인 생각은 언제나 지배계급의 생각인 것(Marx)이다.

 

그러면, 양반놈은 상스러운 말, 즉 욕설을 잘 쓰지 않은데 왜 상놈들은 욕설을 잘 쓸까? 그것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먹고 살아가는 형편상(마르크스주의 용어로 물적 조건’) 양반들의 입장에서는 입에서 욕이 나올 일이 별로 없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상놈들이 죽도록 일해서 수확량의 일정량을 꼬박꼬박 갖다 바치는가 하면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종들이 의식주를 다 해결해 주니 말이다. 생산력이 미미하였던 시대에 일 계급의 풍요는 필연적으로 다른 계급의 빈곤을 초래하는 법이어서 상놈의 입장에서는 흉년이 져서 수확량이 바닥을 쳐도 반을 양반에게 갖다 바쳐야 하니 자신의 입에 풀 칠 하기가 힘든 입장에서 어찌 욕이 나오지 않겠는가? 상놈의 존재양식이 상스러운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철학적 유물론의 핵심인 물질이 관념에 우선한다.”는 명제와 일맥상통한다. 욕설의 문제도 그러하다. 이를테면, ‘×같다는 관념이나 언어는 ‘×같은 현실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닌 것이다. 언어가 있기 전에 그 언어에 대응하는 현실이 먼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맥락에서 욕설은 리얼리즘이라는 차원에서 허용되어야 하며 심지어 권장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황석영의 소설 <어둠의 자식들>바른말 고운말 버전으로만 표현하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아닌 것이다. 이는 판소리 <흥부가>을 전라도 방언 아닌 표준말로 노래하라는 것만큼이나 난센스인 것이다.

 

 

 

욕설의 리얼리즘이라는 논리의 적법성을 떠나, 욕설 그 자체는 듣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는 폭력영화에서 핏빛이 낭자한 화면이 우리에게 주는 불편과도 같은 이치다. 이상하게도 최근에 와서 식당이나 선술집 같은 데서 술 마시다 보면 주변 테이블에서 거친 욕설로 담화하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런 분위기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이 되어 가족 보호의 차원에서 째려보거나 하면서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만용을 발동할까 싶지만 웬만하면 참는다. 이러한 나의 인내심의 바탕은 욕설의 리얼리즘이다. 욕설을 내뱉는 대중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은 경제상황이 점점 나빠져 가는 한국사회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욕설을 남발하는 대중의 경향성을 탓할 것이 아니라, 경기가 속히 회복되길 바라고 또 이 사회에서 경제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욕설은 인간 내부의 비상한 감정이 언어의 형식으로 바깥으로 표출되는 심리 현상이다. 이러한 공격기제는 정신건강 유지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화를 참는 사람보다 화를 표출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전교조에 오면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가 많다. 내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또 조직발전에도 기여할 목적으로 거친 글로 참교육의 적들을 향해 일갈하는데, 양반놈인 나는 욕설 대신에 좌경종파패거리라는 용어를 쓴다. 똑같은 대상을 향해 어떤 이들은 의견그룹이라 일컫지만, 바른말고운말어법은 리얼리즘과 거리가 멀다. , 의견그룹이란 표현은 종파패거리들의 속성을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 이들 종파의 의견은 종파 내에서도 극소수의 패거리들에 의해 밀실에서 생산된다. 그러니 그룹이란 말은 당치도 않다. 어젯글에서 내가 적시한 대표적인 만행들(조합원성폭력, 밀실야합, 선거부정)은 종파 내의 일진들의 작품이고 이들 일진들이 전교조를 좌지우지하는 실세들이다.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무엇이 건강할 리 없다. 소수의 무리들에 의해 밀실에서 생산되는 의견은 의견이 아니라 음모일 뿐이다. ‘건강한 종파건강한 일진이란 말만큼 난센스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