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의식

자본과 소비 습성

리틀윙 2012. 12. 29. 11:29

 

 

 

 

 

   그저께(12.26) 기본제공통화 300분을 다 소비했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12월에 전교조 일로 통화할 일이 많았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의 휴대폰 씀씀이가 헤퍼졌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6월에 스마트폰 구입하면서 월55천에 300분 기본통화제를 쓰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100분 조금 넘게 쓰거나 맘껏 써도 200분을 잘 넘기지 않았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는 그리 많이 쓰지 않았다 싶은데도 20일 경에 벌써 200분을 초과해버리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휴대폰이나 전화기로 통화를 소비하는 것은 전기나 물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소비자가 전기를 쓰면 공급 업체인 한전에서도 자원이 방출되기 때문에 당연히 소비량에 비례해서 사용료를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휴대폰 사용은 소비가 느는 만큼 공급자의 입장에서 물적 유출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통신업자의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통화 사용량이 증대되면 될수록 이윤이 급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어떤 식으로든 통화의 과잉소비를 부추겨야 한다.

일전에 무궁화호 타고 서울을 올라가는데 대전에서 승차한 4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울 도착할 때까지 휴대폰으로 계속 통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2시간 정도 걸리지 싶은데 2시간 내내 한 두세 사람에게 연속으로 전화를 내는데 대화내용에 귀 기울여보니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닌 그냥 쓰잘데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때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1분에 몇 백원씩 하는 통화요금이니 2시간이면 돈이 몇 만원 되지 싶은데 왜 저러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그때가 말일쯤 되었던가 싶다. 무슨 뜻인지 부언이 필요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통화의 과잉소비가 길들여지면, 그 관성력이 지속되어 요금제가 바뀌어도 소비량이 스마트폰 사용 이전에 비해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같으면 굳이 전화할 일이 없는데도 전화기를 들게 된다. 쓸데없는 전화질이 어느 새 내 몸에 맞는 옷처럼 습관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가? 전화질 안 하면 옷 하나를 덜 입은 것처럼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요컨대,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소비습성이 길들여지는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통화는 간단히란 구호는 하나의 상식이었다. 공중전화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뒷사람을 위한 측면에서도 그러했고 또 급한 일로 집안에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계속 통화중이면 화가 치밀어 올라 급기야 가정의 불화로 연결되거나 하니, 가정의 화목이나 회사 업무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서도 간단한 통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도덕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되는 이동통신사업이 정착되면서 이러한 상식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갔다.

 

자본은 이 세상을 자본주의식으로 개조해간다.(마르크스) 우리에게 일상화된 어떤 행동양식이나 가치관을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의 경우 길들여진 결과이다. 빼빼로데이 때나 발렌탄이데이 때 뭘 주고 받지 않으면 허전한 느낌, 이게 인류 또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습성일까? 눈 오는 날엔 연인과 극장을 찾는 풍속도는 우리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영화 <러브 스토리> 이전인 오륙십년대의 젊은이들에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관념이 있지 아니했다.

'존재와 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욕설의 리얼리즘  (0) 2013.09.29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1) 2013.01.25
눈(目)의 진화 - 3  (0) 2011.11.13
눈(目)의 진화 - 2  (0) 2011.11.13
눈(目)의 진화 - 1  (0) 201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