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의식

눈(目)의 진화 - 3

리틀윙 2011. 11. 13. 19:32

 

눈은 마음의 창이다.

 

 

원시영장류에서 인류에 이르는 진화 과정에서 신체 구조상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났건만 왜 하필 ‘눈의 진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 지루한 이 글의 주제는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집단의 특징인 ‘연대의식’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것인데, ‘눈(目)의 진화’가 그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주1).

눈은 마음의 창(窓)이다. 입체시에서 중심와로 그리고 3색형 색각을 지닌 눈의 진화를 통해 유인원(주2)에게서만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풍부한 표정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침팬지에게는 적어도 10가지 표정이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 풍부한 표정이 구성원간의 연대의식을 생겨나게 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생겨난 '숲천장'이란 밀집된 공간 속에서 초기 영장류들은 면대면(面對面, face-to-face)의 집단생활에 익숙해졌고, 그 뒤 극심한 한랭화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시켜온 뛰어난 시력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풍부한 표정이 생겨난 것이다.

표정에 의한 의사소통, 즉 “눈으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동료에 대한 유대감도 깊어져갔다. 그 유대감으로 함께 적과 싸우고 함께 먹이를 찾게 된 우리의 선조는 마침내 나무 위에서 숨어 살던 숲생활을 버리고 삶에서 동료와 함께 초원이란 신천지로 진출하게 되었다.

 

 

 

 

 

눈의 진화와 관련하여 끝으로 모든 영장류 가운데 인간의 눈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을 보라. 침팬지의 눈과 인간의 눈이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흰자위’ 부분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 사는 동물들에겐 흰자위가 있으면 불리하다. 상대방은 나의 흰자위를 통해 내가 한 눈을 팔고 있는지 또 지금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복서나 이종격투기 따위의 파이터들은 싸울 때 상대의 주먹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응시한다.

그러나 인류는 싸움이 적은 사회를 이룩한 덕분에(주3) 흰자위의 불리함이 사라졌다. 오히려 인간은 흰자위를 이용해서 누구를 바라보는지, 상대에 대한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확실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감정을 전하고 싶은 상대를 확실히 바라보며 좀 더 깊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누구를 향해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는지를 알려주는 ‘흰자위’야말로 사회적 동물이라 일컬어지는 인간 사회의 상징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곁들여 정리해본다.

 

모든 것은 변한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고정불변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태초의 지구는 오늘날과 달리 전체가 한몸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눈도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즉, 변화의 소산인 것이다. - 변화의 근본 동인이나 동력은 전적으로 유물적 원리에 기인한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

인간 눈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지구 내부의 지각변동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살펴봤다. 물론, 지구 내부의 변화가 곧바로 특정 단계에서의 특정 방향으로의 눈의 진화를 야기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는 유기체의 의식적인 면(의지와 노력)이 작용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식적인 부분을 추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존재 조건의 변화’라는 점에서......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지구 상에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연대의식'은 "처음부터 무턱대고 서로 연대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의지가 그것을 낳은 것이 아니라, 연대의식을 학습하고 단련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또 연대의식의 형성이 유인원의 존재조건에 매우 유리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의지가 강하더라도 변화의 물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생물학적 진화 또는 사회적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1) 5,500만년 전,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생겨난 ‘숲천장’이라는 존재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입체시’ 따위의 눈의 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 3,300만년 전, 한랭화가 찾아들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선조는 ‘입체시’에 만족했을 것이며 따라서 ‘중심와’나 ‘3색형 색각’으로의 진화 따위는 모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의 진화]와 관련한 지금까지의 글을 맺으면서...

부수적으로 교육적인 의미를 덧붙여본다.

 

작년 한해 처음으로 특수학급을 맡아본 경험이 있었는데, 3월에 뇌병변의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눈 맞추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신체적 장애로 인해 이들의 눈은 상대와 눈맞춤을 잘 못하는 '사시'의 경우가 많다 한다. 눈맞추기가 어려우니 마음맞추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경구를 지금까지 근성으로 생각해왔건만,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이웃들과 또 우리 아이들과 ‘눈으로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행위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지구상에 수백수천만 종 가운데 흰자위의 눈을 가진 개체는 오직 인간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또한, 내가 매일 건성으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귀한 눈을 가진 둘도 없이 존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두자. 잘 사는 집 애든 가난한 집 애든, 공부 잘 하는 애든 못 하는 애든, 우리가 그 귀한 이름을 부를 때...... 아무리 바쁘더라도 반드시 눈으로(eye-to-eye) 소통하자. 수행평가 점수 기록하기 위해 호명할 때, 점수가 낮아 고개 숙이고 “예”하는 아이가 있으면 이름을 다시 불러 나의 따뜻한 시선과 그의 눈이 마주하게 하자. 

 

................

 

주1)

물론, 눈으로 소통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은 당연하다. 유적 존재로서 인간사회에서 진정한 연대의식은 '노동'을 통해 확립되었다. 엥겔스가 논증하듯이, 노동을 통한 언어의 출현으로 고도의 연대의식이 확립되었을 것이다. 이 글은 인간의 눈이 어떻게 진화하였으며 그 진화과정의 소산으로 이 세계의 다른 모든 종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간 특유의 연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그 맹아적 기원을 논하는 것이다.

 

주2)

분류학상 유인원의 외연은 영장류의 외연보다 좁다. 수학 식으로 그 포함관계를 적자면, “유인원 ⊂ 영장류”가 된다.

유인원은 영장류 가운데 ‘사람상과’에 속하는 꼬리가 없는 종을 말한다. 유인원은 2과 4속 14종으로 나뉜다.

1) 긴팔원숭이과 : 긴팔원숭이 등의 소형 유인원류

2) 사람과 :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사람

 

주3)

"싸움이 적은 사회"란 말에 대해, 전쟁이나 사회적 분규가 잦은 현대인의 세계를 떠올릴 때 전혀 앞뒤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말의 의미는 '약육강식'의 야만적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 문맥에서 '싸움'이란 낱말의 의미는 '전쟁'이 아닌 '먹이를 놓고 벌이는 개인적인 다툼'을 뜻한다.

예를 들면, 동물원의 원숭이들은 자신이 확보한 먹이에 몰두해 있을 때 다른 원숭이가 다가오면 적대적인 반응을 취하지만, 인간은 식사 때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웃에 대해 그가 먹이를 빼앗을까 하는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초기의 인류도 "먹이를 놓고 전투(전쟁)를 벌이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그것도 수렵/채취의 단계에 있을 때는 그러하지 않았다. 먹이를 둘러싼 분쟁(전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식량을 저장 - 일종의 '잉여'이다. 생산력이 증대되어 이 '잉여'의 양도 증대되었을 때 '계급'이 발생한다는 것이 맑스주의의 논리다 - 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즉, 수렵단계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힘의 논리를 앞세운 약탈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에 대해 [민중의 세계사]에서 크리스 하먼이 멋지게 서술하고 있다. -> 같은책, 4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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