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의식

눈(目)의 진화 - 1

리틀윙 2011. 11. 13. 19:27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다큐멘터리는 즐겨 시청한다. 그 중 [동물의 왕국]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가 즐겨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는 언제나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살아가는데, 자연과학 교과서보다는 오히려 한 편의 자연과학 다큐물이 자연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더 유용한 교육매체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통해 한 편의 과학다큐 [경이로운 지구, Amazing Earth]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 이 다큐물은 ‘자연변증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다큐물을 만든 이는 엥겔스 따위의 시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철학적 관점을 갖지 않더라도 자연의 진화에 관한 올바른 사실관계는 그 자체로 풍부한 변증법적 원리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엥겔스의 말대로, “자연은 변증법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총 6편으로 제작된 [경이로운 지구]의 제 5편은 운석의 충돌로 인해 공룡이 멸종한 다음 시기인 지금부터 약 5천5백만년 전에 최초의 포유류인 카르폴레스테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카르폴레스테스에서 유인원 그리고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인간의 조상이 각 단계에서 자신의 눈을 진화시켜온 근본 동인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풀어 보겠다.

 

이 진화의 과정은 “존재와 의식”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모든 변화(진화)는 물질적 조건에 따른다.”

변화의 이유(동인), 변화의 조건, 변화의 방향... 이 모든 것이 유물적 원리 즉 물적 조건에 따른다는 것이다.

 

1) 변화의 이유(동인)

이러한 변화는 창조론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어떤 절대자가 처음부터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각각의 상황에서 불리한 생존 조건을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혁신시켜온 결과이다. 창조론에 따르면 원숭이는 처음부터 원숭이였고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이었다. 모든 사물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고정불변하는 그 무엇이다. 이것이 변증법에 대비되는 형이상학의 관점이다.

(# 밑줄 친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서... 별도의 지면을 통해 적도록 하겠습니다.)

 

2) 변화의 조건

결핍과 풍요, 이 두 상반되는 조건이 변화를 수반한다. 그 변화의 원리는 "양질 전화"라는 변증법적 법칙을 따른다. 결핍의 상황을 맞이하여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유기체의 의지만으로는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에 필요한 객관적 물적 조건에 이르렀을 때 변화가 이루어진다. 인류의 눈의 진화 과정에서 결정적 조건은 지구의 기온 변화와 관계있다.

 

 

3) 변화의 방향

변화의 방향은 존재의 물적 조건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먹고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건 뭐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인원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연대의식이 자리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존재와 의식”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연결된다.

다음 편 글의 핵심이 이 부분에 관한 것인데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영장류나 인간의 특징인 군집생활은 어떤 고정불변된 인간본성(=협동심, 연대의식)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활방식이 그들의 존재 조건 상 가장 유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협동(연대)하고자 하는 마음 또는 의지가 군집생활로 인간을 이끈 것이 아니라, 군집생활(=존재양식)을 통해 협동심과 연대의식(=의식)이 길러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모두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 31쪽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다른 포유류 종들보다 훨씬 더 협동적인 삶을 영위함으로써 땅에 내려와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생존에 유리했다. 협동해서 일하는 법과 그에 필요한 새로운 정신적 습성을 배울 수 있었던 집단들은 생존하고 번식했지만, 그러지 못한 집단들은 소멸했다.

 

호랑이 따위의 맹수들에게는 없는 연대의식이 영장류나 인간에게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집단생활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최선의 삶의 방식이었기에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존재양식) 그러한 삶의 방식을 통해 연대의식이 학습되고 길러져 온 것(=의식)이다.

 

좀 전에 뜸 들였던 [경이로운 지구 제5편, 눈의 진화]는 인간에게 특유한 이 연대의식의 형성에서 눈의 진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흥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도대체 눈의 진화와 연대의식의 성립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눈의 진화’와 관련한 종(種)의 진화과정이다.

 

인간의 조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인 카르폴레스테스에서 현재의 영장류와 인류에 이르는 진화의 과정은 한마디로, “나무 위의 삶에서 땅 위의 삶으로의 변신 과정”으로 요약된다.

몸길이가 15cm밖에 안되는 카르폴레스테스나 170cm의 인간이나 모두 야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에는 그 존재조건(=신체조건)이 미약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진화 과정 속에 숨은 의미를 발굴하는 이 작업은 요컨대, 연약한 몸을 가진 영장류가 대관절 뭘 믿고 안전한 나무 위의 생활을 뒤로 하고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을까 하는 그 인과관계를 풀어내는 것이 핵심 관건인 것이다.

 

 

 

1) 카르폴레스테스 → 쇼쇼니우스

카르폴레스테스가 쇼쇼니우스로 진화할 수 있었던 물적 조건 형성의 발단은 지구 내부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지구내부에서 맨틀의 거대한 대류가 발생하여 5,500만 년 전 하나였던 유럽과 그린란드를 갈라놓는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마그마가 상승하였는데 이 마그마가 해저에 있던 퇴적물 사이로 침투하여 지구의 대기 온도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퇴적물의 정체는 메탄수화물인데, 이것은 열을 받으면 강력한 온실효과를 지닌 메탄가스를 발생시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 그림에서 달걀처럼 생긴 것이 메탄수화물이 저장된 공동이다.

 

 

 

 

메탄가스로 둘러싸인 지구는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북극지방까지 활엽수로 가득 찼다. 활엽수는 가지를 옆으로 넓게 뻗치는 성질이 있어 나무와 나무사이가 연결되어 빽빽한 숲을 이루었다. ‘숲천장’이라 불리는 이것이 우리의 선조를 단숨에 번영하도록 이끌어주었다. 숲천장은 영장류에게 낙원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풍부한 나무 열매 덕분에 먹이를 찾기 위해 땅으로 내려올 필요가 없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개체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갔다.(→ 양적 발전)

 

존재 조건의 이러한 변화는 눈의 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최초의 선조인 카르폴레스테스와 그 다음 단계의 종인 쇼쇼니우스의 눈을 비교해보자.  

 

 

얼굴 옆면에 있던 두 눈이 숲천장에 살면서 정면에 붙어 있는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정면으로 향한 두 눈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눈에 비해 전체 시계(視界)는 좁지만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입체시’가 발달한다.

그러면 카르폴레스테스의 눈과 쇼쇼니우스의 눈의 구조가 달라지게된 이유가 뭘까? 

두 눈이 서로 떨어져있으면 시계가 넓어 주변의 상황과 천적의 동태에 효율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카르폴레스테스의 시대에는 활엽수로 이루어진 숲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한 나무에서 열매를 다 먹고 다른 나무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땅으로 내려와 이동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천적의 눈에 띄어 잡아먹힐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그림에서 왼쪽 눈의 구조가 유리했다. 그러나, 숲천장에서 공중활공으로 나무와 나무사이를 이동했던 쇼쇼니우스의 경우 천적을 향한 경계태세를 갖출 필요가 없었고 또 점프하기 위해서는 ‘거리감’이 중요했으므로 입체시의 눈이 유리했다.(주1)

 

대륙 분열에 의한 지구 기온의 변화가 우리 선조의 눈의 구조를 크게 진화시켰다. 이어지는 눈의 진화 또한 지구 내부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전자의 변화는 혜택이었다면 후자의 변화는 재난이라 하겠다. 이렇듯,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 모두 발전을 이끈다.

만약 쇼쇼니우스 시대의 물적 조건(=자연환경)이 바뀌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이고 기회는 곧 위기인 것이다. 이것이 변증법이다.

 

변증법이 뭔지를 설명하는 한 낱말로 우리는 보통 ‘정반합’을 떠올리지만, 정반합이 변증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분은 많지 않다. 오히려 ‘양날의 칼’이나 ‘동전의 양면’이란 말이 변증법의 의미를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다.

 

 - 계속 -  

 

주1)

이 같은 이치의 철학(변증법적 유물론)적 의미는, "존재의 양식에 따라 바람직한 눈의 구조에 대한 인식(=의식)이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논의를 좀 더 진전시키면,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유기체가 처해 있는 존재양식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침팬지의 몸에 털이 많은 것은 인간에 비해 열등한 표식이라고 해서 바리깡으로 그들 몸의 털을 다 밀어버린다면, 그것이 침팬지의 입장에서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몸에 털을 없애는 것이 진화의 방향이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의식은... 오직 털이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양식(ex, 생산력의 발전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에 도달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치에서 생각할 때, 옛날이야기에서 천년 묵은 구미호나 우렁이각시 따위의 픽션은 순전히...... 인간의 (자의적인) 의식이 빚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구렁이나 구미호의 존재양식에서는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는" 그런 헛된 망상(=의식)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서부개척시대에 백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도륙하여 땅을 다 빼앗은 뒤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인디언 추장에게 제안을 하였다.

 

"당신 부족에서 전도유망한 청년 몇을 보내주면 우리가 그들에게 무상으로 신식교육을 시켜주겠다"

이에 대한 인디언 추장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전에도 그런 제안이 있어 우리 애들을 몇 명 보냈는데 이들은 모두 바보가 되어 돌아왔다. 예전처럼 빨리 달릴 줄도 모르고 숲속에서 생활하는 법도 잊어버리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딜 줄 모르는 낙오자가 되었다. 이 같은 존재양식(# 나의 표현)은 우리 부족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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