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의식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

리틀윙 2015. 4. 7. 08:08

며칠 전, 문재인이 조선일보 사장과 접촉한 것이 ‘변절’이니 하는 비판에 대한 반비판의 글을 쓰면서 그 논리로 헤겔의 유명한 명제를 인용했습니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그런데 적잖은 분들이 이 말을 오해하시는 듯합니다. 사실, 사상사에서 헤겔의 이 말만큼 양극단의 논란을 빚어온 경우도 없다고 합니다(엥겔스). 위의 말은 옮기는 사람에 따라 거꾸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둘의 차이는 ‘현실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죠. 이 차이는 논자가 관념론의 입장이냐 혹은 유물론의 입장이냐 하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관념론자들은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 된다”는 부분에 방점을 둘 것이고, 유물론자들은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는 것을 강조하겠죠.

그러나, 정확한 뜻은 문장 그대로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며,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는 오직 변증법적 관점으로 접근할 때만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변증법적 관점이란, 서로 대조적인 범주(=대립쌍)를 각각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헤겔의 위의 문장은 “어떤 주장이 이성적일 때 현실로 이루어지며, 반대로 현실적 힘을 가진 만큼 이성적 설득력을 갖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저 문장에서 ‘현실적’이란 말을 ‘현실주의’ 혹은 ‘실용주의’의 의미로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문재인의 그러한 행보가 실용주의를 가장한 ‘꼼수’가 아니냐는 겁니다. 문재인이 꼼수를 부리는지 어떤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헤겔의 문장을 인용한 것은 ‘현실주의’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사회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분들은 헤겔의 저 문장을 우리 운동 현실과 비추어 정말 뼈를 깎는 마음으로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다. The rational is the real.

 

여기서 ‘현실적’의 의미는 ‘현실화 된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realize 실현되다’가 되겠습니다. 즉, 어떤 주장이 충분히 이성적이어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은 현실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예수 천국, 지옥 불신”이란 주장은 이성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따라서 그의 이성적 노력은 허공에 대고 주먹질 하는 것과 진배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운동판의 주장들이 대부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편,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The real is the rational)이라는 말은, 인간 삶 속에서 현실적 힘을 갖는 무엇은 곧 대중을 지배하는 이성으로 자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제 글에서 문제가 된 ‘조선일보’의 예를 들어 봅시다. 운동권 사람들이 ‘좃선’이라는 신경질적인 표현으로 모욕할 만큼 이 신문(=이성적인 체계)은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비이성적인 매체죠. 그러나 ‘진보’를 자임하는 자들이 뭐라 하건 간에 조선일보와 종편이 대중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목욕탕이건 버스터미널이건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대중은 ‘종편 TV’만 시청합니다. 요컨대, 이 비이성적인 정신체계가 “현실적으로(the real)” 대중의 이성을 지배하고(the rational)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선’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 여기(21세기초 한국사회)”에서 최선의 방책이 뭔가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좃선’이니 ‘똥누리당’이니 하는 냉소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그저 마스터베이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자족적 진보).

 

다시 말하지만, 80년대식으로 지하에서 독립운동 하듯 사회운동을 하는 시대는 가고 없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아군/적군’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우리의 벗이라 생각하는 이른바 ‘민중’이 과연 어느 편에 있는가 하는 것부터 냉철히 짚어봐야 합니다. 적의 벗은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문재인의 행보를 ‘이적행위’로 본다면, 조선일보 보는 선량한 우리 이웃들이나 대선 때 새누리당 찍은 민초들은 다 우리의 적으로 규정하고 상종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
The real is the rational and the rational is the real.

 

‘이성적’에 해당하는 영단어는 ‘rational’인데 이는 ‘합리적’이란 뜻도 있습니다. 합리성이란 비례배분(비율 ratio)의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 자기의식, 즉 진보-보수, 좌-우의 비율을 경우에 따라 합리적으로 자기조절 해가는 것, 이게 운동권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전략전술의 기본이죠. 진보-보수의 스펙트럼 상 현재 대중의 경향성이 ‘진보0 - 보수10’의 포지션에 있다면 ‘진보2 - 보수8’의 눈높이로 다가가서 ‘진보1 - 보수9’로 끌어주는 것이 최선입니다. ‘진보0 - 보수10’이나 ‘진보1 - 보수9’의 대중에게 ‘진보10 - 보수0’의 ‘이성’을 강변하는 것은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고(not rational) 따라서 그런 노력은 절대 현실화 될 수 없습니다(not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