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초 이야기

반장 선거

리틀윙 2013. 5. 3. 06:09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해보면 가끔씩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교사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사하는 흔한 해프닝 중의 하나가 선거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 아이가 친구의 추천을 받아 얼떨결에 출마하여 한 표도 못 얻는 경우이다. 추천한 사람과 출마한 본인이 한 표씩만 만들어도 최소한 두 표가 나와야 하는데, 한 표도 안 나오는 것은 왜일까? 특히 저학년의 경우, 자기 이름을 스스로 적기가 쉽지 않다. 이건 발달단계에서 나타나는 어린아이 특유의 양심에서 기인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보통의 경우, 반장으로 뽑히고 싶은 마음과 그 양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이는 선생님, 제 이름 적어도 되냐요라고 물어온다. 경험이 많은 교사라면 저학년 반장선거에서는 자기 이름 적는 것이 전혀 양심에 꾸리지 않는 일일뿐더러, 내적 논리상으로도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미리 일러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추천한 녀석이 추천대상자를 찍지 않는 표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무엇보다, 아이들이 선거를 그리 심각한 이벤트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자기중심적인 어린아이의 심리 특성이 작용한 것인데, 아이의 입장에서는 누구를 반장/부반장으로 뽑는 것보다 그저 손들고 일어서서 누구누구를 추천한다는 한마디 말을 함으로써 선거라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놀라운 것은, 배신당한 쪽에서도 별 섭섭한 마음을 품지 않는 점이다. 그게 아이들이다!

 

 

 

 

다부초에서는 다달이 반장/부반장을 선출한다.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학생대표라는 역할을 경험하게 하려는 취지이다.

우리 반 선거는 구조적으로 민주주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인 비밀선거가 지켜지기 어려운 애로점이 있다. 남자가 넷 여자가 셋인데, 정상적(?)이라면 남자아이는 남자 후보를, 여자아이는 여자후보를 뽑아야 한다. 지난 달 선거가 그랬다. 학급선거는 반장을 먼저 뽑고 이어서 부반장을 뽑는데, 여자 아이는 반장선거와 부반장선거 모두 34로 패했다. ‘성차별 표심의 쓴맛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달 선거에서 이 아이는 승리하였다. 주된 승리 요인은 남성 후보진영에서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여자 하나, 남자 둘이 출마하였으니 결과는 뻔한 이치였다. 속으로 나는 이 여자아이가 되기를 바랬다. 다른 이유는 없고 지난달에 두 번씩이나 낙마한 쓰라림이 안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반을 못 얻을 경우, 결선투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부담이 남게 되는데...... 나의 이러한 양심적 갈등을 어떤 한 아이가 해결해주었다. 여자아이가 네 표로 과반을 획득한 것이다. 남성 유권자 가운데 하나가 자기존재를 배반하고 이성의 후보자를 지지한 것이다. 그게 누구인지 나는 모르지만 아마 아이들은 알 것이다.

이어서 벌어진 부반장 선거에서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 두 명이 출마했는데 문제는 반장선거에서 한 표밖에 못 얻어 멘붕상태에 빠진 남자 아이가 자신은 "투표용지에 아무 이름도 적지 않고 기권을 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아이의 태도가 달갑지 않았다. 자기감정에 휩싸여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겠다는 것이 교육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점이 그 하나이고, 남성 대 여성의 '묻지마 투표'로 전개될 것이 뻔한데 한 사람이 기권하면 33 동점으로 재투표가 벌어질 판국이기 때문에 더욱 못마땅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의 고민을 누가 해결해주었다. 부반장선거에서는 여성 유권자가 이탈 하여 이성의 입후보자에게 표를 던졌다. 42로 남자 아이의 승리. 이 여자 아이가 누구인지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반 모두가 안다.

다부초, 여러모로 재밌다. 일곱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강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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