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스펙 공화국

리틀윙 2013. 3. 17. 12:43

졸업(commencement)이란 말은 '시작하다(commence)'라는 낱말의 명사형이. 하나의 과정을 마침은 더 나은 과정으로 향하기 위한 시작을 의미하건만, 한국인의 향학열은 졸업과 동시에 멈춘다. ‘학이시습지(=학습)’가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기 때문이다.

석사는 몰라도 박사까지 밟은 사람이 학위 받자마자 학문과 담쌓고 지내는 것을 보면서 책가방 끈 길이가 뭘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분들이 학위를 획득하기까지 고역으로 점철된 ‘My Way’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때 면전에서 함께 웃음을 나누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을 참기 힘들다. 학문의 길이 무슨 군복무 과정이라도 되는가? 그렇게 힘든 공부 과정을 애써 밟으려는 뜻은 말할 것도 없이 스펙 쌓기가 목적이기 때문일 터이다. 이들에겐 학위 받는 순간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스펙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걸 적용해야 마땅하다. 태권도 단증 따고 나서 수련을 멈춘 사람의 10년 뒤 내공이 어떻게 될까? 석박사 학위 받고 공부를 멈춘 사람의 지적 자질이 학위와 무관하게 평소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의 그것보다 나을까?

    

그리고 스펙이란 잣대로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려는 시도 자체가 반지성적일 뿐더러 상식에도 반한다.

인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의 자질을 오늘날의 스펙으로 환산해보면 어떤 답이 나올까?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집념,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천재성, 마더 테레사의 숭고한 이상을 스펙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빈센트 반 고흐는 미술 교육기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늦깎이 화가였는데, 그의 자질을 현대적 의미의 스펙으로 말하면 거의 백지에 가깝다.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스펙 개념으로 판단한다면 아마 스티브 잡스도 직장을 못 구해 노숙자로 늙어 죽었을 것이다.

스펙이 인간자질의 유력한 잣대로 유통되는 사회는 사기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틀림없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영어 알파벳을 겨우 아는 지적 수준인데도 영어종합시험도 패스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이런저런 스펙을 발판 삼아 지금 대학교수를 하고 있다. , 대한민국... 이 역겨운 천민자본주의사회여!

 

 

 

'교육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명식 수업  (0) 2015.09.19
실천적 지식, 이론적 지식  (0) 2015.07.30
물화된 삶, 물화된 교육  (0) 2013.02.11
일과 휴식  (0) 2013.01.29
학습 부진아   (0) 201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