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실천적 지식, 이론적 지식

리틀윙 2015. 7. 30. 08:14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록 음악 애호가로서 나는 록 음악에 대한 촉이 제법 발달해 있었다. 이를테면, 한 두 마디 기타 솔로만 듣고서도 기타리스트가 누구인지 알아맞힌다. 심지어 내가 처음 듣는 곡이라 하더라도 특유의 기타 톤이나 연주 스타일로 누구의 기타인지 대충 알아맞히곤 한다. 특히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에 대해선 나름 전문적 식견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어느 시기에 웹 서핑을 하다가 지미 헨드릭스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선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헨드릭스에 대해 나름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건만,  A4 용지 2장 정도의 짧은 문건이 나열한 그 뮤지션에 관한 정보 속엔 내가 몰랐던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오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인과관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론과 실천의 통합적 관계’로 요약된다.
(내 책 [교사가 교사에게]에서도 그렇고, 내 글에서 ‘통합적’이란 말은 ‘변증법적’이란 말과 동의어로 쓴다. 후자 대신 굳이 전자를 쓰는 까닭은 전략적인 입장이 전부이다.)

그때까지 내가 지미 헨드릭스에 대해 많이 안다고 했던 것은 요컨대 ‘실천적 지식’이 전부였다. 헨드릭스의 음반을 틀어 놓고 소주 한 잔 걸치면서 그의 음악에 취하거나 또 영상물을 통해 이빨로 기타를 연주하거나 무대 위에서 기타에 불 지르고 하는 기이한 그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이른바 ‘록의 정신’을 추체험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건 ‘몸으로 배우는 공부’였다.
이 농밀한 실천적 지식은 그 자체로 크나큰 자랑일지언정, ‘지성의 산물’이라하기엔 그 한계가 너무도 빤한 것이었다. 이삼십 대 십수 년 동안 내가 음반을 통한 음악 감상이나 벗들과의 토론, 그리고 기타 연습을 통해 익힌 지식들은 지미 헨드릭스에 관한 한 권의 책을 통해 하룻밤에 익힌 지식만 못한 초라한 지식이었다.

물론, ‘머리로 배우는 공부’ 역시 한계가 있긴 마찬가지다. 이삼십 대 록 음악에 대한 나의 편력이 ‘실천적 지식’ 위주였다면, 사십 대 이후 몰입한 재즈 음악에 대한 지식은 ‘이론적 지식’이 주를 이룬다. 재즈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재즈 음악사나 뮤지션의 생애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할 수 있지만...... 솔직히 이삼십 대에 타오르는 열정으로 록 음악에 심취했을 때만큼 재즈에 몰입하진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금 내 삶은 이삼십 대와 달리 음악이 전부가 아닌 탓에 온 몸으로 음악에 뛰어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즈에 관해 이야기 하라면 화려한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는 있다. 몸을 통하지 않고 머리를 통한 공부가 앞서면 지적 허영심이나 위선을 구성할 가능성이 많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이 대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최선의 앎은 이론과 실천,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한다. 이론적 깊이가 없는 실천적 지식이나, 실천적 진정성이 결여된 이론적 지식은 절름발이 지성의 한계를 못 벗어난다. 전자의 경우는 배타적 아집, 후자의 경우는 위선과 가식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많다.

.........

교사인 사람에게 방학은 놀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방학을 맞아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예술 관련 책 가운데 [Paint It Rock]이란 책을 재밌게 봤다. 제목이 롤링 스톤즈의 [Paint It Black]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만화책이지만 쉽게 읽을 책은 아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숨에 이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덮으면서 찾아드는 생각은...... 내가 모르는 음악이 너무 많다는 거다. 적어도 록음악이나 팝 음악에 관해 나는 음악을 정말 많이 안다고 자부했다. 그간 내가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귀납적으로 정립한 나의 음악지식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한 권의 책과 대조해 보면 허점투성이임을 알게 된다. 앎이란, 내가 모른다는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실천적 지식은 이론적 지식으로 완성되고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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