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나들이(TRAVEL)

전주 한옥마을을 다녀와서

리틀윙 2013. 1. 27. 17:46

 

 

 

구미에서 오후 1시경에 출발하여 휴게소에 들러 점심 먹고 하면서 4시가 조금 못 돼 주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맨 처음 들른 곳이 경기전이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모신 곳이다. 이성계의 아들 태종이 나라를 안정시킨 뒤에 개성, 전주, 경주, 평양, 영흥의 5개 지역에 부왕의 어진을 모셨는데, 어진은 그 자체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매우 소중히 다뤄졌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빛이 바래는 것을 감안하여 10년마다 새로 그려서 전시했다고 한다.

이성계를 보면서 같은 전주 이씨 이승만과 이명박을 떠올렸다. 이명박은 이성계보다 별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욕을 많이 먹는 것일까? 그리고, 용비어천가와 유신헌법이 뭐가 다를까 생각해보았다.

 

 

 

 

경기전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배가 출출해서 식당을 찾던 중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교동석갈비를 찾았다. 사진이 석갈비인데 맛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해서 다신 찾고 싶지 않은 집이다. 사진의 갈비 양이면 2인분 정도 될 것 같은데 1인분에 1만원이다. 가격은 비싸고 양은 너무 적어서 두 사람이면 4인 분은 먹어야 한다.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 왜관 석쇠구이집에서는 4만원으로 저것보다 더 맛있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숙소로 가서 전부 바닥에 누워 TV 시청 + 독서

한옥집인데다 하필 그 날 날씨가 추워서 약간 고생함. 위풍은 약간 있었지만 추워서 잠 못 자고 할 정도는 아님. 옆집은 보기 드물게 2층한옥집인데, 명색이 한옥호텔이라 하지만 내부구조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냥 한옥집 <교동명가>에 묵었다.

아침 1030분에 방을 빼줘야 하는데 아침 식사를 챙겨주신다. 썩 융숭한 상은 아니지만 나름 정성껏 차려진 흔적이 엿보여 아침식사로선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 집에서 하룻밤 묶는데 12만원(-, 12)

 

 

 

 

 

1030분까지 버티다가 애들 둘은 전통인형만들기 체험장에 집어넣고 아내와 함께 향교와 몇 군데를 들렀다.

향교 입구 옆에 효자비가 눈에 들어와 카메라에 담았다. 박진이라는 분이 편찮으신 아버지 병 수발을 위해 벼슬도 포기하고 낙향해서 극진히 모시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3년상을 지냈다는 이야기다.

이런 과도한 효도가 과연 미풍양속으로 전승될만한 가치가 있는가 의구심을 품게 된다.

    

 

 

 

 

 

향교 옆에 <완판본 문화원>이란 곳이 의외로 볼 게 많았다. 유명한 볼거리로는 경기전 근처에 많이 있는데 거기는 상업주의에 물들어 우리 것을 느끼기에는 별로 적절치 않은 듯했다. 반면 향교 근처에는 분위기도 한적하고 우리 문화유산이 예스럽게 잘 준비되어 있어 좋았다.

완판본' 하길래 처음에는 '완결판'의 의미로 이해했지만 전혀 거리가 멀다. '완판본'전주라는 지명과 관계있다. ‘은 전주를 의미한다. 전주의 옛이름이 완산주이고 지금도 전주엔 완산구라는 지명이나 완산중학교 등의 이름이 존재한다. 그래서 완판본이란 전주에서 발간된 책의 총칭을 말한다. 전주엔 완판본, 서울에는 경판본이 있다. 완판본과 경판본은 글씨체에서 차이가 있다. 전주는 조선시대 한글소설 출판의 중심지였다. 우리는 대구가 교육의 도시라고 들어왔는데 나의 살던 고향 대구에는 이런 문화재가 없다. 전주는 적어도 박정희 이전까지는 꽤 잘 나가던 도시로서 서울 다음으로 조선문화의 중심지로서 이름을 떨쳤을 법하다. 조선의 임금들이 전주이씨였고 이승만 초대대통령도 전주이씨였으니...

    

  

그 다음으로 한옥마을의 골목 구석구석을 다녀보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살던 동네의 그 골목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옥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 색다른 것이었는데 전주시에서 특성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하였다. 그 흔적으로 큰 길가의 집들은 담들이 모두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예쁘게 단장되어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은 하회마을과 달리 문화재로서의 전통가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상인들 그리고 문화재가 같이 공존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사진의 집은 큰 길이 아닌 골목길에 위치해 있는 집인데 개량화하지 않아서 다른 도시의 오래된 집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레트 지붕에 이끼 때가 낀 담벽, 인공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역설적으로 내 눈엔 이게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내가 살던 전형적인 도시의 서민 집 모습이다.

 

 

 

 

 

 

전주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SLOW CITY라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시간이 늦게 가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혜택이 느리게 배급된 낙후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의 슈퍼는 흡사 70~80년대의 대구 모습처럼 보인다. ‘양복수선이라는 것도 이곳은 마치 지금 현재의 주민들의 삶터가 아니라 70년대 영화 로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주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 아니라 박정희 이후 눈부시게 성장해온 한국경제의 사각지대로서 발전이 멈춘 소외된 도시로 보인다.

 

 

 

 

한옥마을의 어느 집 담장이다. 담장 높이가 어른의 가슴 정도의 높이다. 밖에서 집안 살림이 다 보인다. 이래서 옛날에는 이웃집 밥숟가락 수까지 알고 지냈다고 하였다. 반면 현대인의 삶은 어떤가? 아파트 앞집에서 누가 죽어도 몇 달을 모르고 지낸다.

그러나 한옥마을에서도 사람 냄새는 그리 나지 않는다. 한옥마을에서 새로 단장한 한옥집에는 돈 헤아릴 기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마담과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짐을 푸는 이방인들만이 있다. 모든 것이 특화에 맞춘 정책의 소산일 뿐,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은 아까 본 슈퍼와 양복수선집의 간판에서나 엿볼 수 있다.

 

 

 

 

그래도 점심 때 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할 겸 찾은 막걸리 집에서 만난 주인은 인간미가 물씬 풍겨왔다. 이 집 이름을 체크하지 않았는데 경기전에서 한옥마을로 진입한 모퉁이에 있는 무슨 주막이었다. 막걸리 한 병에 파전 실컷 먹었는데 12천원밖에 안 한다. 구수한 전라도 말씨로 봐서 아마 전주 토박이 분 같은데, 놀랍게도 이 식당의 보증금이 1억이고 월세가 250이란다. 전주한옥마을의 땅값이 평당 1500만원이라 한다.  

전주한옥마을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앞으로 전국방방곡곡에서 더 많은 손님들이 찾으면 땅값이 더 올라갈 것 같다.

 

 

 

 

 

 

 

 

 

전주 길거리에서 내 눈에 띄었던 것 중의 하나가 치과 간판의 글씨체이다. 저 글씨는 신영복 선생이 개발한 민중체(또는 어깨동무체, 연대체로 불리기도 한다)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전교조나 참여연대 사무실의 현판 외에 길거리에서 저런 글씨체의 입간판을 보기가 드문데 참 특이하다 싶다. 심지어 중학교 교문 입구에 서 있는 비문도 민중체로 그 위용을 자랑하니 이곳이 역시 남도의 땅임을 실감하게 된다.

성심여중은 전주의 명소 '정동성당'의 바로 뒤에 위치한 학교인데, 이름으로 봐서 성당과 관계 있을 것 같다.

 

 

 

 

 

아마 전주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것이 잘 보존된 이 훌륭한 명소 한옥마을을 보유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도시이다. 아쉬운 것은, 접근성이 너무 낙후된 점이다. 전주 시내의 도로망이 너무 후지다. 시내에서 네비가 안내하는대로 큰 사거리에서 직진을 하는데 맞은 편에느 골목길로 진입하게 된다. 왠만한 도시에선 겪을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다. 인프라에 대대적인 개량 작업을 하면 좋겠다. 이건 지자체의 예산으로는 불가능할 것이고 박근혜 당선자가 경상도에 쏟는 정성의 반만 이쪽을 향해 배려해주면 해결될 것 같다만......

 

날씨가 추워서 많이 다니질 못했다. 다음에는 따뜻할 때 와보고자 한다. 신록이 무르익은 한옥마을의 풍경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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