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나들이(TRAVEL)

그 밖의 앙코르 유적지들

리틀윙 2012. 2. 27. 18:08

   캄보디아 여행기, 아직도 덜 끝났냐고 역정 내실 지도 모르겠다.^^ 벌써 종결지었어야 할 것을 자꾸 밍기적거려 유감이다. 변명같지만 여행 갔다 와서 개인적으로 할 일이 많아서 글 쓸 시간이 잘 없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라며, 이 글과 앞으로 하나만 더 쓰고 끝내겠다.

 

 

 

 

 

시엠립에서 앙코르왓 다음으로 유명한 유적지로 누구나 주저 없이 앙코르 톰(Angkor Thom)을 들 것이다. 크메르어로 앙코르 왓사원의 도시’, ‘앙코르 톰성벽의 도시란 뜻이다. 앙코르 톰은 크메르의 다른 왕들과 달리 불교를 신봉했던 왕 자야바르만7세가 건립하였다. 자야바르만7세는 크메르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되는데 여기서 잠깐 앙코르제국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자.

앙코르 왕국은 자야바르만2(802~854)에서 시작한다. 이를 잇는 유명한 왕으로 수리아바르만2(1145~1150)가 있는데, 이는 앙코르왓을 지은 왕이다. 수리아바르만2세 이후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정쟁이 계속되다가 1177년에는 참파(베트남)의 침입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그 후 자야바르만7세는 참파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꾸준히 벌이다가 마침내 참파를 몰아내고 왕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자야바르만7세는 참파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거대한 성벽을 세웠는데 그 성벽 도시가 앙코르 톰이다. 벽으로 에워싸인 도시의 중심부에 앙코르 톰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인 바이온과 바푸온, 피미아나카스, 코끼리 테라스 등이 있다.

 

 

코끼리 테라스

 

 

 

바이온

 

 

 

앙코르 유적지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앙코르왓과 앙코르톰이지만, 여행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매력적인 유적지로 반테이스레이와 타프롬이 있다.

반테이스레이(Banteay Srei)는 앙코르왓에서 프놈쿨렌으로 향하는 2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 이름은 여성의 성채라는 뜻인데, 그 규모가 작고 또 매우 정교한 조각작품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 한다.

앙코르 건축물의 재료는 라테라이트와 사암 그리고 벽돌이 주를 이룬다. 이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는 라테라이트인데 습한 열대지방에서 형성되는 붉은색의 암석으로 매우 단단하다. 앙코르 왓이나 앙코르 톰을 비롯 대부분의 앙코르 건축물은 라테라이트가 주를 이루는데 비해, 반테이스레이의 건축재료는 사암 일색이어서 이곳에 들어 서면 전체적으로 핑크빛을 풍기는 것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흔한 건축 재료인 라테라이트는 단단한 장점이 있지만 섬세한 조각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건축물의 바탕이 사암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채의 벽면에 새겨진 조각 작품들은 1천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마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 매우 섬세하다.

반테이스레이에는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정교한 조각작품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조각상은 '동양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압사라 부조이다.

 

 

 

 

 

 

반테이스레이가 유명해진 것은 이 압사라 부조 때문인데, 이 압사라의 유명세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의 악행에 힘 입었다. 이 여인상을 너무도 사랑한 말로 - 지가 무슨 피그말리온이라고 ^^ - 가 압사라를 훔쳐 가려다가 딱 걸려서 국제적 망신을 사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이때(1922) 앙드레 말로의 나이 22세였다. 개인적으로 앙드레 말로를 좋아 하는 편이다. 앙가즈망 작가로서 상해사변의 체험을 주제로 그가 쓴 <인간의 조건>은 마오의 중국공산당과 장제스의 국민당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가졌던 내게 충격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존경하는 인물로 품었던 그가 동양의 힘 없는 나라에 와서 문화재를 도둑질 하려 했다니 이 또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당시 프랑스 인사들이 이 식민지 나라에 와서 문화재를 반출해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을 것이고 또 진보적인 작가의 양심을 훔쳐갈 만큼 이 압사라의 작품성이 빼어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힌두 문화에서 압사라는 '춤추는 요정'이다.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특별한 성적 의미가 없다. 전형적인 열대 몬순 기후에 사는 크메르 인들은 귀족들을 제외 하곤 남녀 할 것 없이 상반신을 노출한 채로 생활했다고 한다. 여름철 해운대 백사장에서 양복 입고 점잖 빼는 사람들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음 순서로 타프롬(Ta Prom)으로 가보자. 타프롬은 울창한 삼림 속에 있는 '버려진' 사원이다. 위의 사진은 차에서 내려 타프롬으로 향하는 길인데 저 길을 걸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

20세기 초 프랑스 침입자들의 눈에 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세의 위대한 크메르 유적지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앙코르 유적의 대부분은 프랑스의 극동학원의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보전되게 된 것이다. 현재에도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타프롬은 여기저기 무너진 곳을 그대로 방치하여 폐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점이 관광객으로 하여금 타프롬을 찾게 하는 메리트로 작용하고 있다.

 

 

 

 

'버려진'이란 수식어의 의미가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왜 버릴 수밖에 없는지 위의 사진이 잘 말해준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문명에 의한 자연 파괴가 성행하는 반면, 이 타프롬에서는 자연이 문물을 파괴(?)하고 있다. 타프롬의 나무들을 보면서 존 덴버의 노랫말이 생각났다. Life is old there older than the trees, younger than the mounain growing like a breeze... 크메르 민족의 삶은 이 나무들보다는 더 오래됐지만 미풍처럼 순리적으로 자라온 산세보다는 젊다. 고즈넉한 숲 속에 자리한 소박한 옛사원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짓누르고 있는 나무를 죽여야 하건만, 캄보디아 당국의 입장에선 복원하기엔 이미 때가 늦었고 또 나무 뿌리가 일부 유적지를 압도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통큰 결정'이었을까? 아무튼 타프롬에서는 곳곳에서 스퐁나무의 위력에 의해 무너져 내린 건축물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인간이 만든 빼어난 그 무엇도 자연을 압도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를 이 타프롬에서 절감한다.

 

 

 

 

 

 

 

 

 

 

페이스북에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것이다. 배경에 비해 사람이 작게 나온 것이 프로필 사진으로는 흠이라 하겠지만, 일부러 그런 점을 노렸다. 위대한 앙코르 문화와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낮추고 싶어서이다. 요즘 한국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많이 부르짖는데, 아이들 학원 속에 가두지 말고 자유롭게 여행 많이 다니게 하면 저절로 인간 될 것이다.

언젠가 타프롬을 다시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