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 ‘캄보디아의 사람들’에서 ‘사람들’이란 어법에 대해 설명을 하고자 한다.
알다시피 '사람들'에 해당하는 영어는 ‘people’이다. 그런데 이 ‘피플’의 외연이 영장류 가운데 사람과(科)-사람속(屬)에 속하는 호모사피엔스 모두가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즉, ‘피플’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다분히 사회학적 개념인 것이다. 사회과학적 의미에서 피플은 ‘계급적인’ 용어법이다. 이를테면, 삼성가의 귀족들은 ‘피플’에 속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의미로는 ‘보통 사람들’이 ‘피플’에 해당한다. 따라서 영단어 ‘people’을 우리말로 옮길 때는 ‘민중’이라는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링컨의 명문장 “of the people...”은 ‘국민에 의한’이 아니라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로 옮겨야 정상적인 번역이라 하겠다. 참고로, ‘피플’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면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함의를 지닌 영단어로 ‘folk’가 있다. 민요를 ‘포크송(folk song)’이라 하는데, 민요가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불려지는 노래인지를 생각한다면, 피플과 포크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계급적 의미’가 명백해진다 하겠다. 이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캄보디아의 사람들’이란 내 글에 나오는 ‘사람들’은 민초들이며, 나의 관점은 당파적으로 이들 민초들의 입장에 서서 캄보디아의 과거사와 현대사를 조망하는 기조라는 점을 일러두는 바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톤레삽 민초들의 삶이다. 톤레삽(tonle sap)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2010년 여름에 필자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지대에 있는 5대호 가운데 하나인 미시건 호수에 가본 적이 있다. 미시건호는 말이 호수이지 사실상 바다에 가깝다. 황당하게도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갈매기가 호수를 날아다니니 호수를 ‘바다’로 비유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톤레삽은 이 미시건호수보다 더 크다. 톤레삽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2박3일이 걸린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는 법. 11세기 무렵 크메르 민족이 구가했던 앙코르 제국의 번영은 바로 이 거대한 호수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와 밀접하게 관계있다. 당시 앙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왓(현 시엠립)의 주민 수가 100만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같은 시기 서양에서 최고 큰 도시였던 그리스 베네치아와 영국 런던의 인구수보다 무려 10배나 큰 규모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세계사는 서구 중심인데, 이는 왜곡된 교육의 산물일 뿐이다. 객관적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에 비해 서양의 문명은 초라한 수준이었다. 4대문명발상지 가운데 세 곳이 아시아이고 나머지 한 곳도 아프리카인 점이나 세계4대발명품인 종이나 나침반 따위가 모두 중국에서 피어난 점을 보더라도 동양의 역사가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망그로브'라 불리는 이 나무들은 강이나 진흙이 많은 해변에서 서식한다. (위 사진은 인터넷에서 캡쳐한 것)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톤레삽은 캄보디아 국민의 젖줄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섭취하는 단백질의 70퍼센트가 이 톤레삽에서 잡히는 물고기로 충당된다고 한다. 이 호수에 어자원이 얼마나 풍족하냐 하면, 만수기 때는 배를 젓는노에 물고기가 부딪혀 노 젓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톤레삽의 수위는 우기 때와 건기 때 각각 1M와 12M로 그 차이가 현격하다. 톤레삽의 주변엔 메콩강이 흐르는데, 우기 때는 이 메콩강에서 범람한 물이 톤레삽으로 흘러 들어와 호수의 수위가 높아진다고 한다. 이처럼 이 넓은 호수의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건기와 우기를 반복하며 ‘물갈이’가 되기 때문에 호수 바닥과 수중에 새로운 영양분이 공급되어 풍부한 어장이 확보된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위의 사진에서 보듯 큰 나무들이 반쯤 물에 잠겨 있는데 이 나무들이 새끼 물고기들의 은신처 역할을 해 치어들이 성어로 성장하는 가능성을 높여 주는 탓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먹물 이야기!
한자어에서 아름다울 미(美)는 양양(羊)과 큰대(大)의 두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회의문자로서 ‘큰 양’을 뜻한다. 예부터 중국에서 양은 가장 좋은 동물이었다. 고기는 물론 옷감과 젖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쓸모 있는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인간 정신의 발전사에서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관념이 물질적 조건이 바탕해 생성되었다는 점을 짚고 싶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유물론적 관점을 취할 때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세 덕목이 진-선-미인데, 앞의 ‘美’와 마찬가지로 선(善)이나 ‘의(義)’에도 양(羊)이 들어있는 점이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은 물론 옳고 착한 것도 인간 삶의 물적 토대인 ‘의식주’와 관계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도덕이나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톤레삽이 없었더라면 정교하고도 웅장한 앙코르의 유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사진은 톤레 삽에서 가장 흔한 물고기인데 그 이름이 ‘레알’이다. ‘레알’은 캄보디아 화폐 이름이다. 한국의 ‘원’ 영미의 ‘달러’ 일본과 중국은 ‘엔’과 ‘위안’이듯이 캄보디아 돈은 ‘레알’인 것이다. 현대인이 가장 소중한 물신으로 섬기는 돈의 이름이 왜 ‘레알’일까? 그 인과관계는 방금 논한 인간문화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으로 접근해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중국인에게 '양'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듯이 캄보디아인에게는 '레알'이 가장 소중한 대상인 것이다.
톤레삽이 과거 크메르 민족의 번영의 원천이었건만, 현재 이 호수에 사는 민중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는 현실은 씁쓸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톤레삽의 물살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유람선의 시야에 포착되는 민중들은 하나같이 찌들고 결핍된 모습들이다. 그 중 ‘worst of the worst’라 할 최악조건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건너온 이른바 ‘보트 피플’이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폴포트와는 완전히 격이 다른 호치민이 사회주의혁명을 일으킨 이유가 가난한 베트남 인민들을 위해서인데, 부르주아 남베트남인이라면 몰라도 민초들이 왜 조국을 등지고 베트남보다 풍족하기는커녕 감옥이나 다름없는 호수에 갇혀 평생을 이토록 찌들게 살아가는 선택을 했던가 하는 점이다. 아무튼 이들의 삶은 한 눈에 봐도 비참해 보이기만 한다. 호수 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다람쥐 체바퀴 같은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운동할 공간이 없어 한국을 비롯한 해외 선교사들이 수상 가옥 위에 지어준 간이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한다. 아래의 사진들은 톤레삽 아이들의 매일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부분 양식업을 해서 먹고 살겠지만, 가난한 부모의 살림을 보태려고 아이들은 자기 엉덩이보다 약간 더 큰 대야를 배 삼아 막대기로 노를 저어 관광객들이 탄 유람선에 접근을 시도한다. 물론 목적은 ‘원 달러’이다. 어떤 아이는 동료 사업가(?)와의 차별화를 꾀하여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 생산수단(?)은 문명사회에서 건너온 이방인들에겐 소름끼치는 큰 뱀이다. 이런 뱀이 호수에 흔한지 많은 아이들이 자기 키보다 더 큰 비호감 파충류를 무슨 목도리 두르듯 목에 감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캄보디아에서 보냈던 내 여정에서 가장 잊지 못할 한 장면이다. 뱀을 목에 감고 해맑은 웃음 짓는 아이의 모습을 보라. 얼마나 귀엽고 예쁘게 생겼는지. 인간의 팔자란 얼마나 묘한가? 이 아이가 한국에서 연예인 집안에 태어났다면 ‘붕어빵’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지 않겠는가? 반대로, 삼성가문의 재벌 손자가 이 톤레삽 호수에서 태어났더라면 이 아이처럼 뱀을 수단 삼아 하루 일달러 벌이를 위해 종일토록 팔 근육이 마비될 정도로 열심히 노 젓고 다니지 않겠는가?
웅장한 유물/유적이나 대자연이 빚은 톤레삽의 거대한 스케일과 대조적으로 너무나 비참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은 정말이지 소름끼쳐오는 역설이 아닐 수 없었다. 나나 내 아이의 삶이 아니니 그 우울한 현실 뒤로 하고 아름다운 톤레삽의 저녁 노을에 우리들 값싼 연민의 정을 숨기면 맘이 편해질까?
(적고 보니 사진은 석양빛이 아니라 일출 장면인 듯... 인터넷에서 딴 받은 것인데, 일출이든 일몰이든 참 아름답다 그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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