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론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력 사건을 돌아보며

리틀윙 2012. 3. 8. 21:54

오늘이 세계여성의 날이라는 것을 전교조게시판에 입장하여 알게 되었다.

몇 년 만에 게시판이 제법 화사한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저 아래에 성폭력피해상담이란 배너도 보인다.

 

전교조에 투신하여 이삼십대를 조직과 참교육을 위해 바친 한 여성활동가가 조직을 돕다가 성폭력을 겪고 조직으로부터 2차가해로 지금까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분을 가장 힘들게 했던 한 사람은 지금 진보정당의 비례대표로 발탁되어 국회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교조에서 성폭력피해상담'을...?

전교조는 성폭력을 상담해주는 곳이 아니라 성폭력(2차가해)을 저지르는 곳이다.

이렇게 씁쓸한 코미디가 또 있을까?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력 사건을 돌아보며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력 사건 백서가 발간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간 내가 잊고 산 몇 가지 사실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1. 전교조 내에서 헌신적인 조직 활동을 해온 한 여성 동지가 평생토록 씻기 힘든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1. 조직 차원에서 피해자가 바라는 방향으로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1. 피해자가 아직도 고통 속에서 인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그렇다. 내가 잊고 있었던 무엇은 요컨대,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력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죄스러운 마음에서 피해자 동지의 근황을 살펴볼 겸 오랜 만에 피해자지지모임의 카페를 찾았다. 지지모임 내 운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피해자 동지가 최측근에게만 털어놓으시는 내밀한 글들을 열람할 수 있다. 그 중 올 5월에 있었던 교사대회 때 주위 눈길을 피해 어렵사리 현장을 다녀온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의 동지는 인파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몸을 숨기려고 무던히 애쓰신 것 같다. 대회 마지막 순서로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부를 때 속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노라고 심경을 고백하신다.

 

 

"참교육의함성으로"를 부를 때.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얼마만에 현장에서 들어보는건가....

전에는 나도 서서 힘차게 불렀었는데....

학년 초 학부모총회가 있는 날이면 저는 전교조조합원입니다라고 말했고

아주 가끔 아이들에게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들려주고는 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우리들 가운데 운집한 학부모 앞에서 당당히 나는 전교조 교사다라고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몇 되겠는가? 그런데 그 용맹정진 하던 활동가가 지금은 무슨 죄인처럼 광장에서 자신의 몸 숨기기에 급급하니, 무엇이 이 분을 이렇게 만들었던가? 물론 우리 모두는 그 명명백백한 인과관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동지가 칠흑 같은 어둠의 터널에서 못 벗어난 채 죽기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심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백서발간에 즈음하여, 그간 우리가 잊고 있었던 피해자 동지의 아픔을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나누자는 취지로 이 글을 써내려가고자 한다.

 

혹 어떤 분들은 관계자들이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고, 이제 시간도 많이 흘러 잊을 만도 한데, 또 상처를 들춰내 소요를 일으키느냐고 볼멘소리를 하실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폭력이라는 피해의 성격상 상처를 들춰냄으로써 가장 큰 불편을 느낄 쪽은 당사자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왜 피해자와 지지모임 동지들은 자꾸 과거사 불러오기를 시도하는가? 왜 자신의 아픈 상처를 거듭 들춰내 보이는가? 왜 그럴까?

 

 

첫째,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도 상처 나름이다. ‘성폭력이라는 피해는 평생토록 씻기 힘든 트라우마로 남을 성질의 것이다. <참세상>기자와 가졌던 인터뷰의 말미에 민주노총 대대의 대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질문에 피해자 동지는 그냥 평범하게 단 하루라도 살고 싶다고 했다. 대의원들에게 던지는 말이라 보기엔 흡사 동문서답과도 같은 이 답변은 그만큼 그에게 안겨진 고통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둘째,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

상처의 치유는 근본적으로 피해자 본인의 몫이겠으나, 가해자의 협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우리 동지가 입은 피해는 평소 믿고 의지했던 관계망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느 성폭력 피해자보다 훨씬 내상이 심각하다 하겠다. 즉 성폭력 자체보다 사후 문제처리 과정에서 2차가해자들에게서 입은 상처가 더 큰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껏 피해자동지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이렇다 할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피해자 동지의 치유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불을 보듯 뻔한 자신들의 과오가 2차 가해를 구성하지 않는다며 이런저런 거짓증언으로 피해자를 기만하거나, 자신들이 집권하고 있는 조직(전교조집행부)의 힘을 빌려 면죄부 만들어내기에 바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피해자동지를 두 번 세 번 고쳐죽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 피해자 동지는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자신이 입은 피해를 감추기보다는 공론화함으로써 조직 내에서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사실, 세월에 의지한 채 소극적 치유만을 생각하는 보통의 경우에 비추어 피해자의 이 같은 태도는 주위를 놀라게 한다.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할 뿐더러 애써 화를 자초하는 무모한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몰지각한 일부는 이에 대해 피해자가 특정 정파의 의지에 휘둘리고 있다고 떠들어 대지만, 피해자에게 정파적 운운 하는 말보다 더 무식하고도 잔인한 언어폭력은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피해자라면 자신의 트라우마가 정파적으로 이용되기를 눈꼽만큼이라도 바라겠는가?

 

성폭력 피해자에겐 비상구가 없다. 상처를 입고서 그것을 풀기 위해 상처를 알리려면 알릴수록 더욱 상처받게 되는 이 딜레마, 이것이 지구상의 반을 차지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강요된 남근중심의 폭력적 구조가 아닌가?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 있다. 그리고 성폭력은 지하철에서나 혼자 사는 여성의 원룸뿐만 아니라 진보운동판에도 벌어진다는 것이 피해자의 용기있는 폭로를 통해 너무나 허탈하게도우리에게 인지되었다. 영화 [친구]에서 묘사되고 있는 건달 세계에서처럼 우리의 운동판에서도 여성을 소모품쯤으로 취급하는 남근중심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동지가 조직(민주노총) 내에서 발생한 유일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전에도 있었으며, 만약 동지의 용기있는 실천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언제든 버젓이 자행될 것이다. 그러나 그 올곧은 실천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피해자 동지의 심신에 이중삼중의 고초가 드리워지는 대가를 요구했다. 운동의 과정에서 입은 외상(外傷)을 운동적 방법으로 풀기 위해, 즉 스스로를 치유하고 나아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굳이 우직한 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피해자는 20여 년 간 한 지역에서 교사를 했던 터라 다른 학교의 교감·교장도 자신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싫어하던 이웃 학교의 한 교감은 부장교사 회식에서 '걔가 누군가 하면'이라며 피해자를 설명하고 가십 거리로 삼았다. 피해자의 신분은 완전히 노출됐고 더 많은 교사들이 피해자가 누군지 알게 됐다. - <참세상과의 인터뷰>

 

 

누가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가? 우리들 가운데 누가 저 고통의 십분의 일만큼이라도 겪고 있는가? 끔찍한 피해와 외상도 모자라 죄인 아닌 죄인처럼 자신을 숨겨야만 하는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자가 우리들 가운데 어디 있단 말인가? 차라리,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 선언하자. 조직을 위한 헌신의 과정에서 죽기보다 힘든 피해를 입고서 실의에 빠져 단 하루라도 평범하게 살아보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 하는데,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일상을 영위해가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고 가해자이다.

사회적 약자로서 한 여성조합원의 인권은 어떠한 조직적 가치보다 소중히 보호되어야 한다. 글쓴이는 예전에 전교조게시판에서 성폭력의 벽을 넘지 못하면 우리 전교조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뜻에서 경북의 봉화지회는 지회집행부 해산을 선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교조가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안팎으로 터진 이런저런 불리한 여건 속에 조합원들은 나날이 이탈해가고 있으며, 현재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직의 중심사업이 뭔지 모두들 알지 못한다. 총체적 무관심이 우리 조합의 현주소다.

우리 모두는 부디 이것이 나락의 끝이길 바란다. 다행히 객관적 정세 또한 상당 부분 호전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교조의 부활, 아니 진보세력 전체의 총체적 약진은 성폭력의 벽을 넘어설 때만이 가능하다.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이듯이, 피해자 동지가 곧 우리 조직이다. 그가 이 땅의 모든 진보를 대변하고 표상한다. 피해자 개인이 입은 상처는 곧 진보세력 전체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조직적 치유와 피해자 개인의 치유는 그 운명의 궤를 같이 한다. 늦으나마 제발 이제는 인간다운 전교조로 돌아가자. 한 평생을 조직 일에 헌신해온 여성조합원이 위원장의 부탁으로 조직을 도우려다가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단 하루라도 평범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염원이 우리가 들어주기에 그리도 과한 것이란 말인가? 전교조집행부와 민주노총은 지금이라도 피해자 선생님의 원만한 복귀를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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