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학교에 일찍 오는 아이들

리틀윙 2011. 10. 14. 16:01

어떤 아이들이 아침에 일찍 등교할까? 공부 잘 하는 아이일까?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일까? 나의 답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학교에 일찍 온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아이들은 대체로 학업성적이 낮기 때문에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일찍 올 것이라는 것도 맞다. 가난하니까 공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말은 더 이상 불온한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혀 있다. 얼핏, 학교에 일찍 오는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고3수험생 교실은 몰라도 초등학교에선 그러하지 않다.

정상적인 가정의 자녀라면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일찍 올 이유가 없다. 아동성폭력 범죄로부터 가장 취약한 곳 중의 하나가 이른 시간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 방지 대책으로 보안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게 곧 안전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런 특단의 조치로 학교에 CCTV나 안전을 위한 시설물이 설치되는 것이 아이들에게 학교가 위험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또 사실이 그러하다. 교사들의 출근 시간이 보통 820분 전후인데 이른 시간에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형편이 이러하니, 보통의 아이라면 무서워서라도 학교에 일찍 가고 싶지 않아야 하며 정상적인 부모라면 일찍 등교하고자 하는 아이를 말려야 한다. 그런데 굳이 일찍 집을 나서 학교로 향하는 경우는 어떤 아이들일까? 뻔하다. 집에 있어 봤자 별 낙이 없는 아이, 따뜻한 밥이나 따뜻한 눈길이 자신에게 주어질 일이 없는 아이들이 대체로 일찍 학교에 온다. 고학년 남자 아이들의 경우 축구를 하기 위해 일찍 오기도 하지만 특히 여자 아이들의 경우 학교에 일찍 오는 아이들은 대체로 이러한 부류들이다. 이런 아이들에겐 그나마 신세가 비슷한 또래가 자기 반에 있다는 사실이 낙이 되고 위로가 된다. 어떤 아이들에겐 그런 친구가 가족보다 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학교에 일찍 오는 행동이 '강화'되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이 학교에는 소외된 계층의 자녀들이 많다. 부모 중 한쪽이 안 계시는 경우는 기본이고 조부모 밑에서 커는 아이들, 심지어 실질적인 소년소녀 가장의 경우도 있다. 엄마는 자기 길을 가고 없고 아빠는 매일 알콜에 쩔어 있거나 돈 벌러 먼 곳에 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햇살이 비쳐질 것이건만......

아침에 눈 떴을 때 집에 머물러 있어 봤자 별 볼 일이 없는 아이들, 사랑받을 일도 없고 심지어 아침밥도 얻어먹을 일이 없는 가련한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교실, 그래서 자기 신세만큼이나 썰렁한 아침의 교실문을 맨 먼저 여는 것이다. 새벽을 여는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는 새에게 행복의 몫이 많이 돌아가리라는 얼리 버드란 개념은 학교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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