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아이들을 상대로 “교과서를 떠나 뭐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귀신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당연히 “없다”이다. 상식적으로 ‘귀신’이란, "억울하게 죽은 자의 혼령이 인간 세상에 나타나 자신의 한을 누가 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인시위’를 펼치는 따위의 현상"을 말할 것이다. 그래서 ‘처녀귀신’이란 말로 상징되듯이, 민중의 상상력 속에서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로서 그려진다.
이치가 이러하다면, 이를테면 만리장성에선 밤마다 귀신들이 나와서 데모를 해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부역에 끌려가 죽도록 일하는 사이 노부모는 농사를 짓지 못해 굶어 죽어야만 했다. 그리고 신혼기에 끌려간 신랑을 기다리며 망부석이 된 색시는 또 얼마나 많을까? 질곡의 한국현대사만 하더라도 억울하게 죽은 혼령은 부지기수이다. 제주도에서, 통영앞바다에서, 거창에서, 대구가창에서, 문경에서, 등등 끝도 없다. 그리고 80년 광주에서...... 귀신이 있다면 전두환/노태우 집 근처에는 1인시위가 아니라 광화문 촛불시위대와 맞먹는 규모의 집단시위가 밤마다 벌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들 살인마들이 귀신 때문에 잠 못 이룬다는 얘기 못 들어봤다. 그러니 귀신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귀신이 있기를 바라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귀신이 없어서 유감이다. 혹시라도 귀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법치국가에서 사회적 약자가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니,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귀신님이라도 나타나 사필귀정을 위한 '정의의 여신' 노릇을 해주면 좋겠다.
최근에 장자연 씨 사건을 봐도 그렇다. 이 썩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라는 인간들이 마약에 취해 그 연약한 영혼을 짓밟고 또 짓밟았다. 어머니 제삿날에도 불려가 술시중 들고 성 노리개 노릇을 하게 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죽음을 선택했을까? 또 얼마나 추하고 잔인했으면 그들을 ‘악마’라고 불렀을까? 그런데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그 악마들은 법망을 피해 지금껏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남의 가정 파괴시켜 놓고선 자기 가정에서는 어엿한 가장 행세하는가 하면 자기가 서있는 사회적 위치에선 힘없는 이들을 상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얼굴이 너무 예뻤던 죄로 자신들에게 욕을 볼대로 보고 영혼이 망가져간 처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자살’이었건만, 이들은 지금껏 천연덕스럽게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사회적 명망가로서 버젓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또 밤이 되면 제 2의 장자연을 유린하면서 주지육림의 타락을 일삼고 있을 것이다.
회사 직원 동생이 빤히 바라보고 함께 자리하고 있는 술집 자리에서 나에게 얼마나 ○같은 변태 짓을 했는지. 날 밤새도록, 약에 술에 취해서 무슨 약을 얼마나 처먹은 건지 잠도 자지 않고 날 괴롭혔고”
참 슬프다. 이게 동방예의지국인가?
귀신은 없다. 장자연씨는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도 그저 힘없는 신인배우에 불과한 것이다. 이 사회에 양심이란 게 남아 있다면 "살아있는 우리"가 이 여인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그래서 그 가련한 영혼이 늦으나마 차가운 땅에서 안식을 이룰 수 있게 해주자.
고 장자연씨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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