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12월의 편지 - 사람만이 희망이다

리틀윙 2010. 1. 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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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우리지회 전교조 선생님들께.


2009년의 마지막 밤입니다. 지회장으로서의 제 임기가 끝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칠곡지회 일꾼으로서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내년에는 ‘부지회장’의 자격으로 여러 선생님들과 계속 만나겠습니다.

‘조합원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도 계속 써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올해처럼 어떤 정해진 날(매달 마지막 날)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회의 사업과 관련한 전달 말씀을 드릴 때나 아니면 제가 문득 글이 쓰고 싶고 또 그것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을 때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 신임지회장님께서 제게 이 역할을 맡겨주셨습니다.


올해의 마지막에 보내는 이 편지의 주제는 ‘사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영복선생님(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말씀을 토대로 제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쓰겠습니다.

신영복은, 암울한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희망의 길을 찾아갈 것인가에 대해 특유의 구수한 화법으로 소중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길은 어디에 이미 나 있는 것을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영복은 “우리가 함께 걸으면 등 뒤로 길이 생겨난다”라고 말합니다. - 사실, 이 말은 브라질의 교육철학자 파울루 프레이리와 호톤(Horton, M.)이 함께 쓴 책 제목 “우리가 걸으면 길이 됩니다 We Make the Road by Walking"를 패러디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신영복 또는 프레이리&호톤의 이 말은 ‘실천’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함께”라는 수식어입니다. 숲에서 길이 생겨나는 이치가 그러하죠. 한 두 사람의 발자취로는 오솔길이라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또한 어렵사리 생긴 오솔길도 뒤따른 발걸음이 없다면 이내 길이 없어지고 맙니다.

저희 일꾼들이 학교 방문을 가서 선생님들을 만나거나 할 때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늘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우리는 그저 회비만 낼 뿐......” 이러십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관제언론으로부터 ‘이상한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이 전교조에 조합원으로 남아 계시는 자체가 보통의 마음으로는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여느 선생님들이 승진의 길을 가거나 구태의 교직 일상에 안주할 때, 조합원으로 남겠다는 심지 자체가 남다른 실천이며...... 저희 활동가들이 깃발 쥐고 걸어가는 ‘좁은 오솔길’을 뒤따라 걸으시는 겁니다.

현정권은 ‘시국선언’이니 ‘일제고사반대투쟁’이니 하는 이런저런 계기 때마다 전교조에 엄청난 시련을 안겨다 주었건만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동의서 작성’이라는 치졸한 행정조치로 우리 조직에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절대 다수의 조합원선생님들께서는 “이 돈 안 되는” 조합원의 길을 계속 걷고자 동의서를 써 주셨습니다.

지회장으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만, 한편으론 다음과 같은 못된(?) 생각을 품어봤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러한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전교조가 선생님들에게 대관절 무슨 이득을 줍니까? 조합비가 교총회비보다 싸길 합니까 아니면 교장/교감이 전교조에 들었다고 예쁘게 봐주기를 합니까? 그리고 특히 최근에 와서는 언론지상에서 전교조와 관련한 우울한 소식이 보도된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잖은 분들이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다”는 식의 씁쓸한 촌평을 던지시기도 합니다. 주로 전교조를 이탈하셨거나 처음부터 전교조에 속해 있지 않은 분들이 이러한 평론(?)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전교조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이 ‘전교조의 초심’을 걱정하시는 경우도 많고 또 그런 분들이 아직까지 전교조에 남아 계시는 이 사실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분들로 하여금 이 전교조에 남아 있게 하는가 하는......


친애하는 조합원선생님들!

지회장으로서의 마지막 편지라서가 아니라, 이 글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좀 더 솔직하게 논의를 진전시켜보고자 합니다.

솔직히, 활동가인 경우에도, 아니 활동가로서 조직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할수록 전교조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좌절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위선자일 뿐입니다. 솔직히 저도 전교조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질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이것 때문에 전교조를 합니다.

그것은......

그래도 좋은 선생님들은 대부분 전교조인이라는 겁니다. 교사집단 속에서 좋은 벗은 교총이 아닌 전교조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직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아직은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빚어진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전교조가 아직 건강한 조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교직사회 내의 좋은 선생님들이 전교조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좀 전에 제가 던졌던 “절대 다수의 조합원선생님들께서는 왜 이 돈 안 되는 조합원의 길을 계속 걷고자 동의서를 써 주셨던가” 하는 것에 대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조합원선생님들!

운동의 기본은 사람입니다. 인간관계가 운동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벗 따라 강남 간다”고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동료 혹은 선배 선생님 때문에 전교조에 들게 됩니다. 또한 전교조에 실망을 느껴 그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을 때도 그 사람이 우직하게 길 걷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사람 때문에 전교조를 알게 되었고

사람 때문에 전교조에 사랑하게 되었고

심취하여 깊이 들어갔더니 예전에 몰랐던 흉을 알게 되어

심각한 회의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회의 또한 사람에게서 얻은 실망이죠.

그래서 등 돌려 나오려는 순간......

지금까지 전교조를 통해 만났던 이런저런 좋은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좋은 선생은 전교조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예전의 그 “확신”을 다시 상기하면서...... 다시 전교조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도 교육희망은 교총이나 승진의 길에 있지 않는다는 것, 그나마 전교조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확신을 하면서...


그룹 ‘들국화’의 아름다운 전래가요 [내가 찾는 아이]를 동봉해 보냅니다.

이 친구는 이래서 실망스럽고 저 친구는 저래서 싫은데 그러면 내가 찾는 벗은 어디에 있나, 어디에?

마음을 비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좋은 친구들이라는......

노랫말이 지금 제가 적는 글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새삼 의미있게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조합원동지 여러분!

묵은해가 갑니다. 제가 올 1월 맨 처음 드린 편지의 중심내용이 서울에서 일제고사반대투쟁 벌이다가 해임된 7인의 동지들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오늘 묵은해의 마지막 날 아주 기쁜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분들이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이 난 것입니다. 비록 완전한 승리는 아니지만 최소한 일곱 분의 우리 동지들이 오매불망 그리던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판결이 우리 전교조인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제 용산사태의 원만한 해결도 그렇고 묵은해의 마지막이 이렇게 좋으니 새해에는 희망을 조심스레 기대해봅시다.

불도저의 사나이가 제 아무리 무식하게 밀어붙여도...... 역사는 결코 뒤로 후퇴하지 않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여러분, 축 늘어진 어깨를 펴고 옹골찬 새해를 맞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