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교직에 대한 교사들의 급진적 인식 변화가 생활지도를 어렵게 만든다?

리틀윙 2011. 5. 30. 00:45

 

교직에 대한 교사들의 급진적 인식 변화가 생활지도를 어렵게 만든다?

 

내가 교재로 이용하고 있는 교직실무(김진한, 2010)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교직에 대한 인식 또한 급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제 교직은 보수적인 성직관과 전통적인 전문직관을 주장하는 교사들에 대해 노동직이라고 주장하는 교사들(전교조 교사들을 말함, 옮긴이)의 목소리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교사들의 교직에 대한 이러한 인식 변화는 헌신적인 생활지도의 노력보다는 합목적적인 범위 내에서만 생활지도를 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로 바뀌게 되었다.(밑줄은 옮긴이)

 

 

 

 

 

저자가 말하는 '노동직관을 가진 교사'는 '전교조 교사'를 지칭한다. 윗글대로라면 전교조 이전의 교사들은 페스탈로치적 교육애로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했는데, 전교조 이후의 교사들은 적당한 선에서근성으로 생활지도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게 과연 사실일까?

 

우선, 생활지도란 개념부터 명확히 짚고 넘어가보자. 생활지도는 원어로 'life guidance'인데, '가이던스'는 '지도'가 아닌 '안내'로 옮겨야 정상적인 번역이다. 이를테면, 여행가이드를 '여행지도자'라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튼 생활지도는 학교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실의에 빠진 아이의 손을 붙잡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그런 교사의 자세이다. 그런데 우리네 학교에서는 실내화 신고 바깥 출입 못하게 통제하는 것(초등)이나 등교 시간에 조금 늦었다고 해서 교문앞에서 아이들 엎드려뻗쳐 시키는 따위(중등)가 '생활지도'로 통한다.

 

 

 

저자도 적고 있지만, 생활지도는 '훈육'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현실 속에서 생활지도는 '훈육'을 넘어 학생인권을 말살하는 '아동학대'에 가깝다. 오죽하면, 학생의 인권은 교문앞에서 멈춘다 하겠는가. 

 

옛날 선생들이 생활지도에 헌신적이었다고? 그들이 과연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사랑으로 대했던가? 아니, 길 잃은 양이 아니라 온전한 양들조차 죽도록 패지 않았던가?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우리들, 참으로 많이 맞았다. 담배 피우다 들킨 친구들은 뒤지도록 맞았고, 시험 성적 내려간 아이들은 죽도록 맞았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도살장에 끌려온 소들처럼 두려운 눈빛으로 교사의 눈치를 보며 서 있다. 한 학생을 끌어내며 선생이 심문한다.

 

선생: 아부지 머 하시노?

학생-1: 회사 다니심미더.

선생: 회사? 그래 이 빌어물 놈아 너거 아부지는 직장 상사한테 굽신거리가며 니 공부시키는데 니는 시험 30점 묵나? ("철썩") "이리 와!" (또 "철썩") "똑바로 안 서!" ...... "다음!"

(다음은 장동건 선수 입장하는데......)

.......

 

이걸 생활지도라 할 교육학 교수는 없겠지만, 학교현장에선 저런 선생들이 '생활지도 잘 하는 교사'로 인정받는다.

'life guidance'가 '생활의 안내'도 아니고 '생활의 지도'도 아니었다. 그저 '생활의 억압'이었다. 선생님들이 선량한 목자가 아니라 교도소의 간수와도 같았다.

그때 선생님들, 대부분 교단을 떠나셨겠지만, 현재 교단을 지키는 교사들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 사회 전반에 걸쳐 파쇼적 분위기를 일소하고 민주적으로 변신했건만 유독 학교만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군대보다 변화가 늦은 곳이 학교이다. 요즘 선생들, 차이가 있다면 인터넷과 휴대폰 무서워 자제하는 것뿐이다.

물론, 애들이 그때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이래저래 선생님들이 "요즘 선생하기 힘들어졌다"고 하시는데...... 나는 생각을 조금 달리 한다. 학생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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