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5월의 편지 - 삶과 죽음이 하나라...

리틀윙 2009. 5. 31. 21:54

우리 지회 조합원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한 달의 마지막 날인 오늘도 여러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흔히들 계절의 여왕이란 하지만, 우리의 5월은 한편으론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성찰을 요구하는 엄중한 계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이 이번 오월에는 한국현대사에서 또 다른 비극적 방점 하나가 덧붙여졌으니, 5월 23일 우리 시대에서 민주주의와 진보를 상징하는 최고의 아이콘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던진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

그렇습니다. 모든 죽음은 삶의 완성입니다. 한 인간의 삶은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인간 노무현은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성시켰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

그렇습니다. 삶과 죽음은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심오한 변증법적 진리는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란 경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실제로 풍운의 정치가, 승부사 노무현의 정치 이력은 이 ‘생즉필사’의 모토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정계의 비주류로서 시류에 영합할 줄 몰랐던 노무현은 바보였습니다. 바보이면서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분노했기에 그는 수시로 사면초가의 형세에 몰려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우직한 승부수를 띄우면서 기적같은 반전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반전의 드라마도 이 마지막 승부수에 비할 바가 못될 겁니다.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무슨무슨 게이트라는 타이틀 밑에서 꺼져가던 노무현의 정치적 생명은 정말 기적처럼 되살아난 것입니다. 그것도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면서 회생했음에, 우리는 그의 자살이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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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반적인 도식 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 상에서 정치가 노무현에게 진보의 이름으로 그리 후한 점수를 주긴 힘들 겁니다. 퇴임후 봉하마을에서 농사꾼으로 변신한 그의 소탈한 모습은 그의 지지자들에겐 또 다른 참신한 감동으로 다가가겠지만, 이 나라 농민들을 땅바닥에 주저앉게 한 FTA를 성사시킨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위선으로 비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라크 파병 군인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끌어안는 그의 모습 뒤로 머리 잘린 김선일씨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그래서 나는 생전엔 정치가 노무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국사회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정당정치이기에 한 정치가에 대한 평가는 곧 그가 속한 당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노무현이 속한 민주당은 진보적 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이기에 전교조 활동가인 내가 노무현을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충격적이고도 뜻밖인 그의 죽음 앞에서 노무현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 죽음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 노무현에 대한 그간의 나의 편견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임기인 5년이라는 세월의 한계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진보적 정치가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노무현만큼 파격적인 혁신을 시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사실, 이 나라 진보진영은 노무현더러 보수니 뭐니 하면서 씹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 나라 진보정당은 무늬만 진보일 뿐 정치적 내용면이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노무현에 필적할 만한 면이 없습니다.

(이 글의 제목을 처음엔 “권영길이 노무현 같았으면..."으로 붙이려고 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노무현은 세계 최초의 인터넷대통령이었습니다.

이번 노무현 특집방송의 한 화면에서, “민중(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의미가 없다”는 그의 정치관에 새삼 놀랐습니다. 

노무현의 관점을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 환원하면, ‘아우또노미아(=자율)’와 관계있습니다. 진보정당 정치가들 가운데 ‘아우또노미아’의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실천하려는 인물이 있었던가요?

그런 면에서 보수정당인 민주당에 터해 있었지만 노무현은 가장 혁명적인 정치 지도자였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광적인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고졸출신에다가 비주류 정치가로서 지독한 지역주의의 고장 경상도 땅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자고 외치다가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밑천은 무엇입니까?

그 기반은 영리한 주류 정치인들이 아무도 갖지 못했던 힘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그 힘은...... ‘노사모’로 상징되는 “참여하는 다수의 민중”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아마 고 노무현대통령도 몰랐을 겁니다. 그의 죽음을 뒤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릴 것을. 내 가까이 있는 내 아내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중이었음에도 퇴근후 아이들 데리고 봉하마을로 가자고 준엄(?)한 톤으로 요청해왔습니다. 적잖이 놀랐습니다. 협상 끝에 대구 228공원으로 참배하러 갔습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한나라당 표심이 지배적인 대구땅에서 많은 시민들이 노무현을 향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나도 아내가 이렇게 노무현을 사모했던가를 미처 몰랐습니다. 좌파 교육운동가인 남편에게 눈치가 보여서였을까요? 말하자면, 지금껏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잠재적 노사모'였다는 것을 내게 숨겨왔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 앞에서 이러한 '잠재적 노사모'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것을 전교조 내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 서울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도 봤고 또 본부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교조 내의 좌파 섹트 가운데 이들의 이런 모습을 폄하하려는 분이 있다면...... 그는 '진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진보는 단순화입니다. 시골 할머니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진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서 말했듯이, 적어도 이 척박한 한국 정치판에서 노무현만큼 진보적인 정치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386(486)엘리트든 자갈치시장의 아지매든 왜 노사모들은 노무현에게 열광할까요?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독재정치에 대해 뼈에 사무친 반감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노무현의 오픈 리더십이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를 나는 그가 죽은 뒤 TV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영리한 정치가가 아니라 우직한 정치가였기 때문이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변변한 정치적 연줄 없이 늘 비주류로 방황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인 ‘노사모’라는 세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붙여진 별명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보’라는” 그의 소회는 감동 그 자체입니다.


바보 노무현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 길을 가다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피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애써 그 장벽을 치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통 전자를 현명한 사람이라 하고 후자를 우둔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 역사는 바로 이 우직한 사람에 의해 발전해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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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그 날은 우리 전교조가 20돌을 맞이하여 서울에서 한마당을 펼치려던 날이었습니다. 전교조가 여는 가장 큰 행사인데 20주년의 날이니 다른 때보다는 사뭇 뿌듯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하던 중 차내 TV화면에서 그 비보를 접했습니다. 우리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첨에는 누군들 그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필이면 20살 생일을 맞이하는 전교조에게 바보 노무현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전교조는 왜 노무현의 10분지1만큼도 인기가 없을까?

전교조가 죽으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까? 아니 기뻐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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