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동

이별의 습관화

리틀윙 2009. 3. 25. 08:11

친애하는 우리 지회 조합원선생님들께.


2월의 마지막 날이군요.

우리 교육가족에게 2월은 참으로 어수선한 시즌입니다. 한 해의 교육농사를 바쁘게 마감하는 가운데 이런저런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졸업식과 종업식을 통해 우리 제자들을 보내기도 하고 또 동료교사들과 헤어지기도 합니다.

그간에 정든 동료들을 아쉽게 보내고 새로운 동료들을 서먹하게 맞이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익숙해져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별의 습관화”라는 개념을 생각해봅니다. 무릇 사람은 사람을 어렵게 만나고 어렵게 보내야 하는데, 우리 공립학교 교사들은 직업 특성상 동료를 쉽게 만나고 쉽게 보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쉬운 만남’은 ‘쉬운 이별’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기도 하지만, 이 같은 관계망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정을 쉽게 주지 않는 점입니다. 즉, 서로의 만남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예고되어 있기에 헤어지는 순간에 서로가 받을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깊은 관계맺음”을 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이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에 습관화되어가는 이 “얕은 관계맺음의 방정식”을 깰 필요가 있습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만나는 시간동안은 매순간 치열하게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동료들에게도 그러해야 하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러해야 합니다.

가슴이 따뜻한 우리 조합원선생님들은 모두가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수구보수 언론에 의해 우리 전교조가 아무리 왜곡된 비난을 받아도 전교조 교사를 만나본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압니다. 일제고사 거부를 안내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선생님들을 지켜주기 위해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나서는 것도 그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만나는 모습이 그간의 다른 선생님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들이 피부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우리 전교조에게 남은 최후의 무기는 바로 이 ‘우직함’입니다. 손익계산법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치열한 진정성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는 그 우직한 사랑의 정신입니다.


오늘 편지의 키워드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우직한 사랑’이었습니다. 베트 미들러(Bette Midler)의 아름다운 노래 [The Rose]의 노랫말에 이런 뜻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It's the heart, afraid of breaking, that never learns to dance

it's the dream, afraid of waking, that never takes the chance

it's the one who won't be taken, who cannot seem to give

and the soul, afraid of dying, that never learns to love


춤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이별을 두려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는 것은 꿈이 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무엇을 줄 수 없는 사람은 무엇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를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받으시는 조합원선생님들 가운데도 정든 이곳을 떠나시는 분이 계십니다. 모두들 새 일터에서의 삶이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늘 변함없이 우직한 사랑을 실천하는 교육노동자로 남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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