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 7시 40분. 아직 학교에 등교한 아이가 몇 안 된다. 아침에 일찍 온 두 아이가 학교 운동장을 걷고 있다. 우리 학교 시책으로 학생 건강을 위해 아침에 등교하면서 운동장 5바퀴를 돌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열심히 참여한다.
‘7560’이라는 프로그램인데, “1주일(7일)에 5일, 하루에 60분씩 운동하기”라는 의미다. 처음엔 이게 얼마나 효과를 거둘 것인가에 대해 우리 교사들은 대부분 회의적인 시각을 품었다. 줄넘기나 공 따위의 놀이도구 없이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즐거울 리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요즘 아침 햇볕도 뜨겁다. 그런데, 교사의 눈길도 없고 더구나 동행하는 또래들도 없는데 학교 교문에 들어서서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운동장 5바퀴’라는 과업을 완수하고자 하는 의지의 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볼 때 그저 “선생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을 내고 몸을 움직인다. 아이들의 실천에 이 이유 외의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여지는 없다.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행하기!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몰라도 요즘 아이들에게선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교권이 바닥에 내려앉은 현실에서 오래 전에 실종된, 선생님 말씀이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따라야 한다는 순박한 동심의 원형을 이 학교에서 본다. 구미사곡초 아이들 참 착하다.
교사의 말을 잘 따르는 아이는 착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편의상, 전자를 ‘순진한 아이’, 후자를 ‘비판적인 아이’라 일컫자.
사물은 항상 두 측면(양극성, bi-polarity)을 갖기 때문에, 어떠한 가치도 그 자체로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쁜 것은 없다. 어떤 때는 (+)극성이 더 바람직하고 다른 때는 (-)극성이 더 바람직하다. 따라서, 선악의 문제나 옳고 그름의 문제는 항상 특정 시기와 특정 대상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금 논하는 순진성과 비판정신의 문제도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초등교육의 목표는 학생의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 능력 배양과 기본생활습관을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초기본은 속성상 진보와 보수 가운데 보수적 성격에 가깝다. 새로운 무엇에 대한 도전보다는 기존 학습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길러지기 때문이다. 같은 과업을 수차례 반복하는 것을 좋아할 학습자는 없다. 하지만 꾸준한 반복을 통하지 않고선 기초학습능력과 기본생활습관은 길러지지 않는다.
요컨대, 기초기본을 지상과업으로 삼는 초등교육에서는 비판정신보다 순진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겠다. 다행히도 발달단계상 이 시기의 아이들은 교사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따른다. 초등교육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이것은 축복이다. 초등교육의 가능성은 아이들이 교사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순종적 자세에 있다. 초등교육자들은 아이들의 이러한 순진성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이런 이치에 비추어 볼 때, 초등학생에게 섣부른 비판정신을 애써 가르치려는 시도는 “굴러 들어온 복을 내치는 것”과도 같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미명 하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기초기본 학습능력을 갖추지 않아도 좋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교사들을 볼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구구단이나 ABC를 모르는 아이들을 중학교에 올려 보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교육자들이 우리 주변에 없는가?
그렇다고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교육이 바람직할 수는 없다. 학생의 성장을 위해 순진성을 활용하더라도 따뜻한 교육애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설득을 구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순진한 아이들이 교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탓에 초등교육자는 자칫 반교육적인 권위주의자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교사는 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순진한 학생이 교사를 비판하지 않기 때문에 교사가 스스로를 비판해야 한다. 자신의 교육실천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자기 검열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7.4.
'교사가 학부모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랄총량의 법칙 (0) | 2020.04.04 |
---|---|
방학은 아이를 성장시킨다 (0) | 2019.09.07 |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이고 힘이고 공부다 (0) | 2019.06.03 |
진정한 3학년 (0) | 2019.06.03 |
배추흰나비 기르기 (0) | 2019.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