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공교육이다

리틀윙 2019. 3. 27. 11:15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은 자본에 의해 조건화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에서 보듯, 이 조건화(條件化, conditioning)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대학이나 사범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여 임용고시를 치를 때까지 학생들의 열공은 교직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이 주목적일 뿐 교육자로서 원대한 포부따위는 부차적인 것이다. 하지만 임용고시를 통과해서 교단에 서게 되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편의상 이 경우를 A라 하자.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교사자격증을 못 딴 학생들이 교육종사자의 길을 가는 경로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사립학교에 들어가 교사가 되는 것(=B)이고 다른 것은 사설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C)이다.

 

이 세 부류는 모두 교육자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숭고한 일을 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백년지대계라는 막중한 사명을 실현함에 있어 이들의 실천은 그 결이 크게 다르다. 나는 이 세 부류가 교육자적 자질에 있어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임용고시 합격이 교육자적 자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경험으로도 공립학교 교사가 반드시 사립학교 교사보다 학생을 더 잘 가르치거나 더 존경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는 이들 세 부류의 차이는 자본에 의한 조건화라는 존재조건의 차이가 전부이다.

 

A는 자본에 의한 조건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이 점은 B또한 마찬가지다. 사립학교 교원의 월급은 100퍼센트 국가예산으로 지급된다. 하지만, 교육공무원인 A와 달리, 이들의 신분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 악질 재단이 지배하는 사립학교에서 재단에 밉보인 교사는 쫓겨 날 수도 있다. 교사의 신분은 법으로 보호받기 때문에 함부로 자르진 못하지만, 그 사람이 집단생활에서 버티지 못하도록 해서 스스로 나가도록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C의 경우 신분이 불안정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신분이 불안정하다고 해서 이들이 A, B에 비해 교육자적 자질이 더 낮을 것이라 판단할 근거는 희박하다. 오히려 적어도 실력 면에서는 훨씬 나을 수 있으며, 경쟁원리에 따른 교육서비스의 질도 더 좋을 것이기에 학생만족도가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존재양식이 의식을 규정하는바, 이들의 정념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이다. 이들이 더 나은 교육실천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은 고객 유치를 위한 전략적 차원의 발로일 뿐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함은 아니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자신의 교육혼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교육 강사가 있다면 그는 자기 직장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는 그것을 용인해야 한다.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교육자적 입장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자질과는 무관하다. 그의 존재조건에 말미암는다. 그의 모든 실천은 철저히 자본에 의해 조건화된다. 미래의 일꾼을 길러내는 교육의 장에서 교육이 이런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재앙이라 하겠다.

 

인간 역사에서 공교육 public education’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바로 이런 것이다. , 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선 공립/사립을 막론하고 교육은 반드시 공적 사업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자리한 것이다. 사립학교 운영비의 95퍼센트가 국가예산으로 지급되고, 동네 유치원과 어린이집 운영비도 국가예산으로 지원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그런데, 돈 밖에 모르는 교육장사꾼들이 국민 혈세로 지원된 보조금을 사적 용도로 전용하거나 횡령해온 것이 드러나 온 나라가 시끄럽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오래도록 관행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밝혀진 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하니 그 적폐의 수준이 너무 심각한 지경이다.

 

악덕 교육업자들이 돈만 요리 해 먹는 게 아니다. 이런 자들에게 고용된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들이 자기 소신대로 교육실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의 개념으로 매개가 있는 곳에선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조기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진대, 탐욕의 화신인 절대권력자가 지배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교육과 공교육은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 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이 상품으로 매매되고 소비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국가의 밝은 미래를 위해 백년지대계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행위에서 공공성이 실현되게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1)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종국적으로는 국영화해야 하며 그때까지 모든 사설 교육기관을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

 

2) 한유총의 행각에서 보듯, 교육마피아들의 횡포가 심각하다. 이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과 유착관계에 있는 정치인들을 색출하여 그 면면들을 국민에게 널리 알려 정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3) 초중등사립학교와 사립대학의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 사립학교법을 상식적 수준을 개정해야 한다. 식민지적 사립학교법이 고쳐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교육마피아들의 상당수가 입법기구인 국회에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게 입법 권력을 부여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자들도 명단을 노출시켜 정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교육은 주로 철학과 소신의 문제다. 유아교육이든 초중등교육이든 교육은 교사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교육자가 소신 있는 교육실천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자본의 조건화로부터의 해방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교육 부문에서 공공성이 철저히 지켜질 때만 가능하다.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