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도량초 특유의 학교풍토와 ‘비움과 채움’의 역설

리틀윙 2018. 11. 16. 08:05

종례 마치고 돌아서서 교사용 책상에 앉자면, 꼭 교실 문을 나서면서 내게 바이 티처 Bye teacher!” 하면서 인사를 하는 아이가 있다. 그러면, 내가 “Bye ○○!” 하고 답한다. 그런데, 이게 전파가 돼서 이젠 많은 아이들이 나와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는 게 우리 반에서 유행이 되었다.

 

도량초 아이들, 참으로 기특하다.

특히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공부를 굉장히 재미있게 한다. 무슨 공부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의 수업에 쫙 빨려 들어온다. 심지어 아이들이 가장 지겨워하는 사회 수업도 재미있어 한다. 아이들 말로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원래) 지겨운 것도 재미있다고 한다. 올해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작년 아이들도 그런 편이었다. 31년째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이곳 아이들이 특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이 인과관계를 조망하기 위해 미시교육사회학 개념인 학교풍토(school climate)라는 개념을 가져와 본다. (Brookover라는 사람의 이론인데, 92-93년 교원대학교대학원에서 석사과정으로 지옥 같은 교육사회학과에서 공부할 때 교수에게서 아마도 유일하게 배운 지식이었다.)

 

사실, ‘학교풍토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선 적용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첫째, 미국은 의료복지가 그러하듯이, 교육에서도 공공성의 개념이 희박하다. 국가나 주정부가 공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순전히 시장경제의 원리에 맡겨 버린다. 그래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오는 사립학교처럼 연간 학비가 수천만 원 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는 전기세를 못 내서 전기가 끊겨 버리는 학교도 있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편차가 극심한 미국에서는 학교마다 특유의 풍토가 형성되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둘째, 우리의 경우 초등학교의 99퍼센트가 공립학교다. 학교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교사집단인데, 공립학교 교사들은 최대 5년을 기점으로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교사가 학교풍토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이 도량초의 분위기는 다른 학교와 확연이 구별되는 뭔가가 있다. 이 특유의 학교분위기 때문에 내가 학교풍토라는 개념을 끌어오는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로 특징된다. 하나는 방금 말한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남다른 열의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교사를 매우 존중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관이 있을 것으로 나는 본다. , 교사에 대한 존중은 교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뜻한다. 해서, 아이들이 교사의 수업에 잘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도량 아이들의 이러한 특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 인과관계에 대한 나의 직관을 조심스레 피력하자면......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나는 도량초 특유의 가정배경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도량초는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모두 서민 아파트다. 학부모들의 사회경제적 배경(socio-economic status, SES)이 소박 그 자체다. 내가 알기로, 학부모들 가운데 우리 교사들보다 SES가 더 높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교사가 우러러 보이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서 이곳 아이들은 사설학원에의 의존도가 다른 학교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다. 방과 후에 우리 아이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샘터)이나 교회 공부방을 많이 이용한다. 그리고 학교 주관의 유상/무상 방과후(토요방과후 포함) 교육프로그램의 참여도도 매우 높다. 놀라운 것은, 평상시나 방학 중에 학습부진학생을 대상으로 열리는 튼튼교실 프로그램에 학습부진 대상이 아닌 학생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점이다.

 

결과적으로, 학년말에 실시하는 학교교육 만족도 조사에서도 학부모들의 학교 평가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신다.

 

덧붙여, 아파트 밀집단지이다 보니 특별히 심각한 결손 가정이 없는 점도 학교풍토 형성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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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 반 수업 분위기로 돌아가자.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라온다. 영어든 노래든 리코더든 기타든, 아이들은 내가 매개(비고츠키의 용어로 mediation‘instruction’의 의미다)하는 것을 스펀지처럼 쑥쑥 빨아들인다. 만약 대도시의 아이들처럼 사설 영어학원에서 이런저런 학습을 받았다면 내가 가르치는 파닉스 학습 따위에 그리 깊은 흥미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맥락에서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 4성장으로서의 교육에 나오는 말을 새삼 음미해볼 필요를 느낀다.

 

>> 성장의 으뜸가는 조건은 미성숙이다. ... 미성숙(immaturity)이란 말에서 는 단순히 없다든가 결핍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훨씬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능력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용량(capacity)’이라는 뜻은, 빈 그릇을 말한다. ... 미성숙이라는 말은 앞으로 발달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

 

존 듀이의 이 훌륭한 통찰을 접하면서 나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그릇 메타포를 떠올렸다. 노자에 따르면, 그릇의 쓸모는 채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 있다. 무엇을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학부모들은 도무지 비울 줄은 모르고 서로 앞 다투며 아이들 머릿속을 채우려고만 한다.

 

그러나, 우리 교사들은 학교 밖에서 미리 채워 오는 많은 아이들이 학교공부에서는 흥미와 열의를 잃고 퇴행의 일로를 치닫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반면, 이곳 도량의 아이들은 비어 있는 상태로 학교에 온다. 그러니, 교사가 매개해주는 것을 쫙쫙 빨아들이는 것이다. 사회든 음악이든 다 재밌다 한다. 아이들이 재밌게 배우니 가르치는 나도 재밌다. 교사 입장에서는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가르치는 것보다 더한 고역이 없고, 열심히 배우려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일도 없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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