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진리는 구체적으로

리틀윙 2018. 11. 16. 09:38

 

 

그저께 PDC(긍정훈육법) 연수에서 거론되었던 이슈를 나누고자 한다.

 

칭찬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대해주는 게 좋은 것은 알지만, 미성숙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가끔씩 선을 넘는 행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많은 좋은 얘기가 오갔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에 대한 답으로 제시하는 것이 경계 세우기이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의견에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물음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그 경계 지점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 어디까지는 허용하고 어디부터는 막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편적인 답은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교사에 따라 아이에 따라 긴장과 이완의 수준이 달라야 한다.

 

1) 상황 변인 : 학급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교사가 망가지면서 아이들과 같이 뒹구는 상황에서는 이완의 폭을 최대한 여유 있게 하되 이때도 교사의 권위는 최소한 지켜야 한다.

 

2) 교사 변인 : 나는 오십대 중반의 남자 교사이고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가 남다른 편이다. 이런 나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아이들이 주눅 들기 쉽다. 해서 나의 경우는 긴장보다는 이완의 미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3) 학생 변인 : 소심하고 모범적이기만 아이에게는 어떤 면에서 일탈적 행위를 권장할 필요까지 있지만 말썽만 피우는 녀석에게는 고강도 전략이 주효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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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은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경우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답은 있을 수 없다. 진리는 항상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구체적으로 발견되는 법이다.

 

그럼에도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훈육의 문제도 그렇다. 교사론 책에서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배웠지만 현실 속에서는 학년초에 아이들 잡아야 한다는 사고가 대세를 이룬다. 교육학 강의에서 사랑으로를 설파하는 학자가 악동교실에서 하루만 선생 노릇해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반대로, 교육현실이 녹록치 않다고 해서 아이들 잡는 게 능사일 수는 없다. 교사가 무슨 백정은 아니지 않는가? 잡는다는 것이 고강도전략을 의미한다면, 모든 아이들에게 고강도 전략을 펼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자명해진다. 특정 꼴통 녀석을 향해 고강도의 훈육을 펼칠 때 착하기만 한 아이들이 주눅들 수 있다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이건 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누구에겐들 어려운 일일 것이다. 완전한 교사는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고민과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세다.

 

9.30.